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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5.0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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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돈을 빌리거나 소작을 붙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지주의 집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줄행랑을 치는 일들이 일어났다. 몇 달 후 서울이 수복되자, 상황이 급변하여 인민군에 부역하여 완장을 차고 마을을 호령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심판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물건을 강탈한 자, 폭력을 행사한 자,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들은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했다. 이 와중에 다행히 목숨을 보전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아주머니는 6.25 전쟁이 터지자 돈을 꿔준 지주에게 찾아가서 정직하게 빚을 청산한 후에라야 피난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훗날 지주가 말하기를 전쟁통에 너나 할 것 없이 약탈하고, 빚을 떼먹고 도망가는데, 이 아주머니만 빚을 청산하고 갔으니 이런 사람이 인민군에 부역할 리가 없다고 하였단다. 우리나라의 대문호 박경리 선생님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 중 한 대목이다.
사람의 욕심에 대한 얘기는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게는 얼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잘 나타나 있다. 해질녘까지 밟고 다닌 모든 땅을 주겠다는 제안을 들은 욕심많은 농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를 돌아다닌 후에 이윽고 자신이 밟는 모든 땅을 가져도 좋다는 말을 들은 직후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가 차지한 땅은 5평 정도의 무덤이 전부였다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욕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 번의 거짓이 한 번의 정직과는 비할 수 없는 이익을 가져다주기에 우리는 정직보다 거짓을 택하고, 나눔보다 축적을 합리화시킨다. 이런 합리화를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근거가 아마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자본주의의 발전과 기독교적 소명의식이 일종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분석한 베버가 2차 세계대전과 기독교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면 기독교의 잘못된 소명의식이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과 이후의 유럽이 다른 것은 역사발전에서 필연적인 현상이다. 구습을 좇는 옛 종교는 역사의 유물로만 남아야 하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교회와 신앙고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기점으로 역사를 BC 와 AD로 나누었다면 앞으로 기독교는 Before Corona와 After Corona 로 나뉠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의 시대를 이끌어갈 뉴처치는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종말론적 신앙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할 수 있다. 정직한 기독교, 욕심을 버리고 나누는 교회, 세속적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는 성직자, 부동산 투기와 자본소득으로 운영하는 벼슬아치 교단이 아니라 재산의 사회환원과 교단권력의 해체를 통해 최소한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머슴 같은 교단, 명문사학과 우수한 인재양성이 아니라 신실한 신앙인과 헌신된 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유명한 이론과 기금모금의 달인 같은 교수들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과 삶을 학생들과 동거동락하며 공유할 수 있는 참스승, 이것이 새로운 일상을 이끌어갈 새로운 교회이다. 새로운 일상(New Normal), 새로운 교회(New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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