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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37)소소한 것들이 궁금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5.06 18:36
  • 호수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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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그릇에 대한 욕심을 버린 지 꽤 된다. 우연히 그릇 파는 곳을 스쳐 지나가게 될 때 아이고 예쁘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하며 바라보긴 하지만 딱히 그것을 내 것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이유를 굳이 헤아려보면 우선 비싸고, 비싼 그릇이 어울릴만한 집도 아닐뿐더러 비싼 것 가지고 있으면서 조심조심, 스트레스 받을 일도 아니다. 그릇도 유행이라 오래 되면 그게 그거라는 것을 결혼할 때 해가지고 온 그릇으로 충분히 경험했다. 매력은 없을지 모르지만 갈수록 실용성이 좋다. 무겁지 않고 단단하며 청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아이들 다 떠나고 둘이 살 때면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없는, 살림 없는 간결한 삶이 내 로망이다. 아직 책은 가득하고 여전히 옷도 많지만 그릇으로는 제법 미니멀한 삶을 살고 있다. 간단한 그릇 코렐을 상용하고 새로운 그릇은 사지 않으니까, 혹시 사더라도 그만큼 내보내니까,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을 하던 김주영 작가의 사퇴의 변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심사위원들의 이름이 써진 유기방짜 그릇이 있고 심사를 위해 모일 때 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기 방짜 그릇으로 식사를 한다는 것, 요즈음 있는 분들 혼사에서 유기그릇 세트는 기본으로 그것도 누구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보다 더 럭셔리한, 오직 단 한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그릇이 문인들을 위해 있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만남을 위한 그릇. 그릇을 보관하는 한식당은 또 얼마나 고급진 곳일까, 김주영 작가는 심사위원 자리에서 물러남을 애틋해하며 그 그릇이라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당연히 작가의 기념품으로 주어졌을 터이지만 지나가버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소회를 그리 표현했을 것이다. 
 이상하게 나는 소소한 것들이 궁금하다. 미덕 가득한 예우라는 단어가 전관과 합쳐지면 고급관료의 과거와 면面을 사용한 후(그러고 보면 전관들도 아이돌이나 탤런트처럼 미모를 파는 것 같기도 하다)턱없이 많은 돈 냄새가 강하게 나는데 문인예우 유기방짜 그릇에는 무슨 향기가 났을까,
 몇 년 전에 어느 작가의 도요 터에 방문했을 때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도자도시락을 본적이 있다. 작가는 도요시절이 한참이나 지난 미혼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유골함을 작업해서 전시회를 한 사람이었다. 실제 몇 종류의 유골함을 살펴보면서 이 유골함에 들어가면 뼈도 유골함도 오랫동안 썩지 않겠구나....걱정 스럽고 궁금했다.
요즈음은 자주 ‘썩는 것’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니까,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얼마나 징그러운가, 땅을 돌고 돌아도 썩지 못하고 바다로 스며들어 물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가고 물고기는 죽으나 여전히 그 안에 싱싱하게 살아있다.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다. 쿠마의 무녀 시빌도 자신이 소원했던 모래알 같은 생일 때문에 죽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소원은 ‘죽고 싶어’ 였다고 엘리웃은 황무지에서 적고 있다. 썩음의 극진한 아름다움은 ‘한 알의 밀알’이다. 그러나 밀알 뿐 일까,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썩을 수 있어서 아름답다.
 유골함 외에도 볼만한 작품이 많이 있었다. 이것저것 작품을 구경하다가 작가가 보여준 도자기 도시락이 있었다. 그게 조그마한 도시락이 아니라 보통 그릇 대여섯 개 정도 들어가는 쟁반처럼 아주 컸다. 그러니 무겁기야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거기다가 뚜껑까지 있었으니 아무나 쉬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가운데에 칸을 만들어야 해서 굽기가 매우 어려운 작품이라고 작가가 말했다. 이렇게 무거운 도시락에 음식을 담으면 도시락이 되는 것일까, 그런 도시락을 누가 들어서 나를까, 어디에서 이런 도시락을 받아서 먹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처음 도자기 도시락을 만든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의 혼수, 즉 이바지 음식을 보내는데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그 이바지 음식을 보고 난 사람들이 또 주문을 해서 알음알음 소문이 좀 났다고, 그 그릇을 본 재벌가의 인사가 도시락으로 주문을 했다고 한다. 사용처는 마작을 할 때 간식 그릇. 마작 하는 사람들과 그들 뒤에서 음식을 담담 하는 사람 무거운 도자기 도시락을 옮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루쉰의 소설집을 읽다 보면 글 뒤편에 그 글을 어디에 언제 발표하고 또 무슨 뜻으로 적었는가에 대한 주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어느 글엔가는 그저 아무런 뜻이 없이 적은 글이니 그냥 독자도 그렇게 읽어달라는 부탁도 있다. 이 글 역시 아무런 뜻이 없는 글이다. 기사에서 본 이름 적힌 유기 방짜 그릇에 이어지는 소소한 상념일 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그냥 그리 읽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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