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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3)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4.30 15:36
  • 호수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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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교수, 예수말씀연구소 소장)

Q 7:2-4 한 백부장이 간청하여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하인이 [병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겠다.”

Q 7:9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에서는 내가 이런 믿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이야기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시달리는 모든 사람에게 하인의 병을 고쳐 주기를 간청한 백부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성경속에서 가버나움의 나사렛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Q의 첫 번째 기적은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이야기인데, 이것은 가나에서 요한복음 2장의 첫 번째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과 비교를 해 볼 수 있다.

둘 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므로 등장인물과 줄거리 그리고 배경도 사뭇 다르기에 내러티브의 구조상으로 두 이야기는 전혀 관계가 없을 듯하나,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가 누구인지 하인들은 알더라는 구절은 가버나움의 기적에서 백부장을 보고서 나사렛 예수께서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자를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과 견주어볼 만하다.

예수님의 토라에 나오는 첫번째 비유에서 백부장이 가진 믿음은 군인 정신이 보여주는 충성을 넘어서 헌신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기에,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부장이 직접 예수를 찾아 나선 것이 헌신의 모습이다.

히브리어 하민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삶 속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 바울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언급하면서 믿음을 충성 곧 히브리어 에무나로 제시한 것은 아주 특별하다.

에무나는 충성이든 믿음이든 동일한 의미로 간주될 수 있는 단어로서, 가나의 기적이 일어난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로 변한 물이 담긴 돌 항아리를 보면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하인들이 돌 항아리 여섯 개에 아귀에까지 물을 채웠으니 나중에 포도주로 변한 양도 굉장하여, 그야말로 가나의 혼인 잔치는 기적을 넘어서 전무후무한 축제의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이든지 가버나움의 기적이든지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로 오신 나사렛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하인들과 백부장은 이미 모든 것을 소상하게 알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한 자들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가나의 기적이든지 가버나움의 기적이든지, 기적이 전하고 있는 실체인 하나님의 나라를 오직 나사렛 예수님께서 가져오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은 그저 소수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몇 주일째 주일예배를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이러한 조치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가 국민의 신앙에 대한 자유와 교회를 통제하려는 아주 잘못된 정책이므로, 교회의 주일성수는 누구도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데, 교회는 질병을 고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전염병을 더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머뭇거리는 유대인에게 보란 듯이 당장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고 이방인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에 게서 보지 못하였다.’며 모든 특권을 가진 유대인이 ‘때가 차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충만해 지는 것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신다.

가나를 넘어서 가버나움까지 기적적인 치유가 퍼져나간 것처럼, 중국 우한 땅을 넘어 온 전염병을 치료하시는 나사렛 예수님의 사랑이 당장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기적을 이 땅에 실현해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가나의 돌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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