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2.2 수 17:52
상단여백
HOME 신학 역사신학
한국성결교회 성장사(10)제2장 교단 행정기구 조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4.30 16:07
  • 호수 479
  • 댓글 0
                            이명직 목사

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4년차가 도래하는 2020년을 맞이하여 기독교헤럴드에서는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기초로 하여 연제한다.

기독교의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 감독, 장로, 집사 등 교회를 운영하고 봉사하는 직책으로 시작한데 근원을 두고, 교단을 이룩하는 조직교회로 활동하는데 편리한 행정기구로 인식하고 교회와 교단의 조직으로 확정하게 된다.

기존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직하고 있는 장로교회가 당회, 노회, 총회 등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고 있으며, 감리회에서도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등 5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고 지교회 치리를 하고 있다.

한국성결교회는 처음에는 감독1인 정치체제에서 교회 수가 확장되면서 당회, 지방회, 총회 등 3단계 치리 기구를 조직하여 운영하게 된다.

이러한 교단 운영체제는 1910년 “동양선교회”가 토마스(John Thomas) 목사를 한국 동양선교회 감독으로 파송하여 치리하다가 1920년 2월에 미국으로 떠났고, 1921년 2월까지는 헤슬렘(Heslem)선교사가 1년간 잠시 치리하였으며, 다시 미국으로 귀국하게 되자 에네스트 A. 길보른(Earnest A. Kilbourne) O.M.S 총리가 한국에 주재하면서 감독의 임무를 맡게 된다.

토마스 감독 등 전직자들은 한국에서 통역 중심의 행정만 소극적으로 일하다 보니 교세 확장이 미흡하게 되어 한 사람의 1인 감독 통치로는 교회발전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교단조직을 시정하기로 한다.

이러한 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경성복음전도관을 “조선 예수교 동양선교회”라고 교단 명칭을 바꾸고, 한국 사람 중에서 목사를 고문으로 하고, 총리는 길보른 선교사가 맡아서 교단조직은 타 교단 행정기구를 참조하여 적용하게 되었다.

한국성결교회교단의 초대 감독은 길보른 목사, 고문은 이명직 목사, 이명헌 목사를 1921년 3월 17일에 추대하고, 3년간 치리하다가 1924년 2월에 길보른 목사가 미국으로 귀국하는 관계로 교단의 기구를 감독과 고문 제도를 폐지하고, 이사회로 개편하여 치리하게 된다.

1. 전국 지방회조직과 교회 운영 조례제정

국내의 타 교단 감리회는 1897년부터 지방회를 조직했고, 장로회에서도 1907년 평양 장대교회에서 노회를 조직하여 신학교 졸업생 7명에게 목사안수하고, 교세 확장과 성장을 교훈 삼아 한국성결교회도 지방기구를 개편하게 된다.

한국성결교회는 1920년부터 지방에 개척된 교회들을 4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경기지방, 충남지방, 경북지방, 경남지방 등에 4명의 목사를 감리사로 파송하고 1년에 1회씩 의무적으로 지방교회를 순회하며 돌보도록 했다.

이후 1928년에는 함남지방, 평남지방이 증설되었고, 1929년에는 함북지방, 안성지방, 동경지방(일본)이 증설되어 명실공히 9개 지방회로 조직 교단이 되었고, 초대 지방 감리사로 이명헌, 강시영, 전성운, 오군네, 박형순, 곽제근, 김응조, 이 건, 강송수, 이문헌 목사 등이 파송 받았다.

“조선 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는 1929년 당시 교회 운영의 조례나 규칙이 제정되지 않아 치리에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장로교회의 제도를 모방하는 등 교회 운영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 무렵 성결교회 조례를 제정하고, 전국교회가 주임교역자와 교회 집사들로 구성한 제직회와 교무, 서무, 재무, 회계 등을 부서로 두고 교회의 모든 행정과 재정은 제직회 결의로 집행하도록 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