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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9)제4편 한국 성결교회 구성과 조직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4.08 14:00
  • 호수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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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직 목사

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4년차가 도래하는 2020년을 맞이하여 기독교헤럴드에서는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기초하여 연재한다.

동양선교회(0.M.S)가 경성 복음전도관(김상준, 정 빈)과 함께 한국에서 시작한 전도사역은 매우 느린 속도로 교세 확장을 하면서 어언 15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O.M.S가 한국에서 자금이 부족했음에도 전도관을 비롯한 성경학원 등의 사옥을 건축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길거리 전도를 통해서 등록한 신자들을 각자 거주지에 있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에 입적시킨다는 동양선교회의 규정과 사명에 따라 무조건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전도 목적에만 열심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성 성경학원에서 공부한 일부 학생들이 교회 개척에 열의가 있어 1907년 5월부터 1921년 8월까지 교단 등의 조직이 없음에도 개인적으로 33개의 교회를 각 지역에 나가서 개척하게 된다.

동양선교회의 일본 내 전도 사정도 한국과 비슷한 실정이었으나 마침내 1917년 교회 조직의 일환으로 일본 성결교회를 교단으로 설립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1921년 9월에 한국성결교회를 교단으로 조직하게 되면서 단체를 결성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당시 기독교 현황은 미국 남 감리회가 1897년 9월 10일에 서울지방회를 조직하였고, 1897년 12월 8일 제1회 선교구역을 구성한 것과, 미국 북 감리회에서도 1905년 6월에 제1회 서울연회를 개최하게 된다.

또한 장로교회는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장로회 독노회”를 창립했으며, 침례교회에서도 1906년 충남 강경 교회에서 첫 번째 대화회(大和會)를 개최하고, 교단을 조직함과 동시에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회”라 정하였으며, 펜의 크 선교사를 초대 감독으로 내정하고, 본부를 원산에 두고 만주와 러시아까지 선교지역으로 정한다.

이와 같이 다른 교단들이 일찍부터 교단 조직을 완성하고, 활발한 부흥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선교회(O.M.S)도 1921년 조직을 정비하고 교회 숫자는 적어도 교단으로서 “한국 성결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제1장 교단조직과 교리 설정

교단 명칭에 있어서 1907년에 설립한 “경성복음전도관”이 교세 확장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1921년 9월에 적합한 명칭으로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변경하게 된다.

한국성결교회의 신조와 교리는 세계의 개신교회들이 공통으로 채택한 복음주의 신앙을 골자로 하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성경, 원죄, 자유의지, 의인, 성결, 칭의 후 범죄, 교회, 재림, 성례전 등 자세한 정의를 설정하고, 바른 신앙생활 기준으로 정했다.

또한 한국성결교회의 조직은 지교회와 지방회 그리고 총회의 3단계 행정기구로 편성하여 활동하게 하면서, 서로 유기적인 봉사와 협조를 간구하도록 운영 체계를 설정하였고, 동양선교회(O.M.S)가 파견한 교단 초대 감독은 토마스, 2대 감독은 헤슬렘, 3대 감독은 길보른 이후 1921년 고문 제도를 두고 임명직 목사가 신학과 행정을 총괄한다.

이로써 한국성결교회가 제 2의 도약을 설계하고 부흥할 수 있는 조직을 완성하게 되었으며, 확고한 교리 설정과 조직 구도를 확정하고 명실 공히 교단규모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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