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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4.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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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휘영청 흐드러진 달빛이 뽕끗뽕긋한 목련 꽃망울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기세로 꼭 껴안았다. 풀벌레 소리는 도망가는 달빛의 노크소리, 차가운 바람소리는 쫓아가는 구름의 헛기침, 어둠 속에서도 사랑의 일은 바쁘기만 한다.
세상을 두 쪽 낼 듯이 여기저기 바람이 분다. 성난 지진은 대지를 쩍쩍 가르고, 인간은 각각 이곳저곳에 자연 격리되고, 아비규환의 팀파눔에서 고민하는 로댕의 자식처럼 인간본질에 대한 사유의 창조이자 종말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인간은 생각할 때 비로소 그동안 감았던 눈을 뜨기 시작한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인간, 신인간이 탄생하는 순간이지만,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다. 어찌하여 인간성은 판도라의 상자에 꼭꼭 쳐박혀 있다가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인가?
길다란 혜성이 검은 유리같은 하늘에 금을 내고야 말았다. 너 때문이다.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천지를 가르는 우주적인 격변이다. 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역시 땅을 찢고 하늘을 검푸른 멍이 들게 하는 우주적인 역변이다. 우리는 사랑과 미움 어디쯤에서 누군가의 사랑에 감동하고 누군가의 미움에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미움으로 병들어서 사랑의 눈물을 흘리며 하늘의 별이 된다. 그래서 사랑이 사무친 별은 결국 하늘을 가르고 사랑찾아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어둠 속에도 길은 있고, 아픔 속에서도 부를 노래가 있다. 사부곡이든 사모곡이든 인간은 그리워할 때 가장 인간답다. 만남 속에서 기쁨을 누린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 후의 그리움의 아픔까지 묶음으로 받는다. 사람은 그저 사람을 만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세상 같지만 나는 옛연인을 떠올리면서 그리움의 노래를 부르련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을 생각하거나, 오늘 사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런가를 염려하는 대신에 지난 날 아련한 만남이 기록된 저 어둔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꽃과 나무와 바람의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세상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내가 혼자라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영혼의 급성폐렴이다. 불안은 바람이 전해준 인간존재의 성찰을 듣지 않은 만성 난청이다. 나를 고칠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제 잘난 맛에 다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산 것 뿐이다. 인생이란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격리, 폐쇄, 중단 류의 언어가 만든 낯선 세상이 인간을 삭제하고, 복사하기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수많은 인간인 듯 인간 아닌 인간 같은 존재를 생산해내고 있다. 인간이 없는 세상에 비치는 달빛이 이리도 야속할 수가 있나 싶고, 한편으론 인간없는 세상이 이리도 은은할 수가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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