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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4.01 16:01
  • 호수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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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종말의 그림자인가? 아니면 새질서(뉴 노멀)을 가져올 역사적 계기(이벤트)가 될 것인가?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질문임에는 틀림없다. 100년 전 세계는 이와 유사한 질문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한 결과 흑사병과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대살육과 경제대공황을 겪어야 했다. 우리의 선조들이 피로써 남겨놓은 역사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함께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내려야 한다.
의학은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연구를 하고,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처방을 내리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교회는 신앙적인 연구와 계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가장 먼저 여의도순복음교회, 분당우리교회, 각 교단총회가 존폐 위기에 직면한 작은교회를 후원하고자 하는 나눔과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들의 신학적 성찰은 매우 적절하고 긍정적인 대처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통을 경감하는 것일 뿐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며,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큰교회나 작은교회나 대격동(upheaval)의 벼랑 끝에 서있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답안지에 겨우 이름 정도 적은 것에 불과하다. 코로나에 대한 교회의 답변이 의학적 백신, 경제적 구호, 사회적 안정으로 그치는 순간, 교회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13억 인도와 15억 중국의 발걸음과 공장이 멈추자, 근심에 쌓인 잿빛 하늘이 그제서야 웃음을 회복했다.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향상시킨 KF94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환경에서도 써야만 하는 이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며 창피할 뿐이다. 현대 의학의 3대분야중 하나인 노화방지 의학분야는 그동안의 성과가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잠깐 스쳐지니가는 코로나에 속수무책이다. 노쇠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이며, 죽음을 논외로 하고 오직 젊음만을 추구하는 노화방지는 제대로 된 생명연장이 될 수 없다. 전세계의 양적완화 정책은 언제 끝날지도 모를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는데 극약처방이 되겠지만, 결국 코로나가 끝나면 정부와 기업은 마른수건 짜듯이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코로나에 대한 교회의 답변은 달라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감염된 사람이 확진자고, 치료의 대상이지만, 신학적으로는 한국 교회는 코로나 테스트에 직면에 깊이 빠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공신학, 공동체신학, 선교적 교회, 희망의 윤리, 사회적 책임, 영적 예배, 교제와 나눔 등 이 모든 것들이 과연 향후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 존속되거나 변형이 될지, 교회는 깊이깊이 성찰해야 한다. 어쩌면 올 한 해가 100년을 준비하는 교회의 터닦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가 스스로 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광야로 내몬 것일지도 모른다. 골프채, 운전대, 악기, 취미, 책 등을 내려놓고 미래 사활을 위한 국가적 영적 대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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