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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69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2.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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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라는 시험막대기 앞에서 불안과 절망으로 요동치는 한국사회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위기를 확산시킨 신천지에 대한 비난은 차고 넘치는데 진정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평화와 소망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 메시지를 상실한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공동체가 아니라 이익단체에 불과하다.  온갖 비난의 화살을 신천지로 집중시켜서 심지어 압수수색하여 명단을 확보하고 사회에서 퇴출시키자는 것이 진정 지금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명의 메시지일까?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사회, 경제적으로 불로소득 부동산만이 꿈이 되어버린 사회, 노년이 노년다운 원숙미를 상실하고, 청년이 청년다운 기상을 상실한 이 시대 한국인들에게 어쩌면 마지막 남은 보루, 가능성인 육체마저 불안에 빼앗겨버린 오늘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교회의 반성, 그리고 공동체적인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인 것이다. 바다위에 떠도는 나뭇조각들도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 살아 움직이는 멀쩡한 배였을 것이다. 개인과 사회에 내재된 불안은 인격과 공동체의 자기 조절력을 파괴하여 어디든지 부딪혀서 깨지고 깨트리기를 반복하는 난파선으로 만들어버린다. 물위를 걷는 베드로가 바람을 보자 물에 빠져버렸다.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는 백부장은 풍랑을 만나자 구원의 소망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은 보건당국, 또는 신약개발회사가 제공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교회는 코로나19외에 수많은 바이러스와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에게 교회만이 던질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응이라면 인간은 갈수록 멸균상태를 선호할 것이고, 부의 정도에 따라서 위생의 격차도 벌어질 것이다. ‘이곳은 멸균상태의 예배실입니다.’ 머지않아 이런 간판도 등장할 것이다. 교회는 안전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영적, 심적, 사회구조적 불안을 치료하는 곳이다. 평화를 상실한 사회에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 교회이지, 좀 덜 불안한 곳으로 선택받고자 선전하는 곳이 되서는 안 된다. 교회가 던져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질병을 맞닥뜨렸을 땐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불안에 휩싸이지 말자. 불안 때문에 사재기하거나 불안의 원인으로 특정한 적을 설정하고 맹비난하지 말자. 오늘의 시원한 징벌이 내일은 나에게 올무가 될 수 있다. 책임과 참여의식을 가지고 공동체적으로 대처하자. 우연적인 현실에서의 성취보다, 확고한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추구하자. 나의 안전과 평화는 공동의 건강과 평화에서 가능함을 직시하고, 이기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연대하자. 의학적 위기 뿐 아니라, 가정적,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노출된 위기의 시민들을 향하여 관심을 갖자. 교회가 사회적 평화를 위해 건강한 언론, 건강한 지역발전, 건강한 경제생태계,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데 힘쓸 것이다. 등등. 백 년 전 3.1절에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이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듯이, 이번 3.1절에는 교회가 사회적 갈등과 불안의 극복을 위해 한목소리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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