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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니우스 심층분석 (23)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2.20 11:40
  • 호수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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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교수(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본지 논설위원)

형제연합교회의 형제들은 처음부터 교권주의적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타락을 주시하면서, 형제들의 연합(jdnota bratrska’,Unitas fratrum)이란 이름을 그들 공동체의 명칭으로 사용하게 된다.여기서 라틴어 프라트룸(fratrum)은 형제를 뜻하며, 우니타스(Unitas)는 연합을 뜻하였다. 형제연합교회는 실제로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며, 글자 그대로 “형제들의 연합체”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전 세계기독교회의 지 교회(枝敎會)의 모습으로 생각하였고, 몸에 달린 여러 지체 중, 하나의 지체로 이해하는 인식에 기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자들이며, 동등한 자격을 가진 형제자매들로서, 사도신경 3번째 항목의 고백에서처럼, 거룩한 보편적인 전체교회를 믿으며, 이러한 전제에서 ‘형제연합교회’는 하나의 지 교회가 분명하였다. 그것은 또 다른 형제들의 그룹에서 성경과 그리스도의 메시아이심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할 때는 언제든지 하나가 될 수 있는 교회연합의 개방성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루터는 1517년 종교개혁을 시작한 후, 1519년 보헤미아에 종교개혁자 얀 후스(J.Hus)가 벌써 100년 전에 가톨릭교회를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부르짖다가 순교 당하였으며, 또한 후스의 개혁정신을 따르는 형제연합교회가 존재함을 알고, 그 교회(형제연합)를 인정하고 교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형제연합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프로테스탄트 편에 서서, 루터교회와 하나가 되어 협력하였던 것이다. 물론 루터와 멜란히톤의 사후에 루터파교회의 후예들이 지나치게 종파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독자생존을 위하여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제후들과 1555년 ‘아욱스부르그종교화의’(Augsburgregionsfreide)란 협약을 체결할 때에, 형제연합교회는 교회연합의 정신을 존중하지 않는 루터파 교회를 불신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교제가 단절되기도 하였다.그리고서 후에 교회의 연합을 강조하고 있는 스트라스부르그의 부쳐와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에게로 방향을 전환하였고, 그들과 연합하고, 유럽의 개혁교회와의 교제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필자는 앞에서 형제연합교회는 이상적인 사도교회를 지향한 교회였으며(참고,2.3. 3),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참 자유로운 제자의 삶을 사는 형제들의 공동체요, 신앙공동체였던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연합은 그들 교회가 지닌 귀중한 가치임을 확인하게 된다.

2) 코메니우스의 교회의 연합정신

코메니우스는 근본적으로 형제연합교회가 지향한 교회관을 충실하게 따랐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코메니우스의 교회연합정신은 그의 삶의 전 과정에서, 또는 문헌들에서 등장하는 그야말로 전문 언어이기도 하였다. 그는 보헤미아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형제연합교회와 함께 망명 생활에 처하였으며, 마침내 30년간의 종교전쟁이 1648년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으로 끝나게 될 때에도, 그 조약이 형제연합교회의 종교자유를 인정하지 않아, 마침내 코메니우스는 형제연합교회를 해산해야 했으며, 스스로 감독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1650년 코메니우스는 형제연합교회를 이끄는 마지막 감독으로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직시하고, “죽어가는 어머니인 형제연합교회의 유언”이란 유명한 글을 남기게 된다. 그는 그 유언의 글에서 형제연합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앙의 유산(신앙의 6가지 보화: ‘하나님의 진리 사랑’, ‘성경책의 배움과 보존’. ‘사랑의 계명 순종을 위하여 교회의 질서와 훈육’, ‘교회의 연합정신’과 ‘모국어의 보존’과 ‘자녀들의 더 좋은 양육’)을 다른 교회(루터교회, 개혁교회, 가톨릭교회)들에서의 생활에서도 견지하게 되기를 권고하였다. 특히 ‘교회의 연합정신’을 강조하면서, 먼저 코메니우스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어머니로 표현하였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자기 자녀의 피를 빨아먹는 호랑이자, 계모로 돌변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진리를 버리고, 우상을 쫓았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프로태스탄트교회)은 투쟁할 수밖에 없었으며, 가톨릭교회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권고하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계명인 이웃사랑 실천과 관련하여 교회훈육의 중요성을 유산의 보화로 강조하면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한 루터의 이신칭의의 남용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루터가 사랑의 실천으로 인도하는 성도들의 훈육을 그의 칭의론에다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지적하면서, 그 당시 루터파 추종자들이 인간의 행동이어야 하는 선행과 관계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루터의 칭의론을 전적으로 오해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문제성을 또한 비판하였다. 코메니우스는 그 당시 루터파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남용이 너희 자녀들 사이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악용하지 않도록 칭의론의 가르침에는 더 많은 규정과 더욱 질서정연한 훈육의 지침을 첨가해야 할 것을 경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훈육을 강조했던 점에서 형제연합교회는 유럽개혁교회와 일치하고 있었는데, 특히 코메니우스는 헬베틱교회(스위스의 개혁교회)의 형제들을 질서와 훈육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칭찬하면서, 역시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에 속한 것들을 너무 많이 짐작하여 말함으로써 재세례파와 소시니안파와 알미니안파와 기타 그밖에 여러 해충들이 생겨나게 했음을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칼빈파 교회는 더 단순하게 덜 사변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깊은 비밀의 경륜에 대하여 더욱 겸손히 말할 것을 충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코메니우스는 루터파 교회와 칼빈파 교회를 서로 자매교회로 인정하였으며, 서로 교회가 연합해야 하는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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