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0.18 일 00:24
상단여백
HOME 논단 쓴물단물
쓴물단물 (68)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2.19 16:16
  • 호수 473
  • 댓글 0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찾아와 청탁을 하였다. 하나는 좌편 하나는 우편에 앉혀달라는 것인데, 예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 위로 향하는 마음, 그 마음이 혀제를 짓밟고 모사를 꾸미고 다른 이를 아프게 한다. 위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아래를 지향할 것을 명령한다. 하늘나라는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서로 섬기는 관계 안에서 이미 이뤄진 것이다. 이런 현실관을 신앙적 현실관이라고 부르자. 

신앙적 현실관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다 아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섬김을 받을 사람이지 섬겨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병이 자기연민이라고 하던데 딱 들어 맞는 얘기다.  예수에게는 좌우보다 상하가 중요했다. 자리를 지향하는 사람은 반드시 좌우를 나누어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아래를 지향하는 사람은 좌우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한다. 예수의 마음을 아는 자가 예수의 제자이며, 예수의 제자의 삶은 언제나 좌우를 가리지 않고 아래를 지향한다. 

오늘 내가 밟고 서고자 애쓸 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혹시 내가 남을 밟거나 딛고 서는 것인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가 하는 크레인, 사다리차 신앙보다 얼마나 더 낮아질 수가 있는가 하는 지표수 신앙이 참 신앙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진정 자존감이 높고, 신앙이 깊고, 사랑이 많은 사람만이 과감하게 낮은 곳으로 물처럼 흘러갈 수 있다. 성결교단에서는 지방회가 한창이다. 수많은 지방회에서 신구임원을 교체하고, 청원안을 결의하여 새로운 회무를 시작한다. 과연 새로운가? 작년보다 올해가 새로우며, 우리는 새로움을 고대하면서 지방회에 참석하는가? 겸손함과 섬김으로 새롭게 하는 예수지향적 지방회가 되기를 응원한다. 

(주)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주)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