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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름보다 높아진 것들을 지우자이 시대가 교회로부터 등을 돌린다 말하기 전, 교회가 세상을 쳐다보느라 등지고 서 있던 ‘십자가의 예수’로 시선을 옮기는 우리 교단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8.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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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예수’로 시선을 옮기는 교단이 돼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요한은 순교를 면한 유일한 사도로 전해진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가장 지독한 로마의 박해자 도미티아누스가 그를 끓는 기름 속에 던져 처형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요한은 기적적으로 살아 밧모섬에 유배된다. 홀로 외로운 섬에 던져진 그는 거기서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은 다음 ‘계시록’을 쓴다. 요한의 계시록은 ‘예수’로 시작해 ‘예수’로 끝난다.

하나님께서 지상의 만유를 통틀어 가장 높여주신 이름이다. 밧모섬에서, 주님이 완성하시게 될 ‘하나님의 경륜’을 보고 들은 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그는 ‘너희’로 불리어지는 모든 이들의 형제가 된다. 여기 서 ‘너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2009년을 살고 있는 우리를 포함한다.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나와 사도가 ‘형제의 연’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이 선포된다. 사도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처지는 ‘예수의’ 그것 곧, 환난과 나라와 인내가 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모이며, 어느 이름을 자랑하고, 어떤 환란과 인내를 상정하여 기도하고 있는가? 목사인가, 예수인가? 명망가인가, 그리스도인인가? 육에 속한 사람인가, 영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율법에 속한 사람인가? 교인들이 서로 ‘승리하세요’라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무엇으로부터의 승리인가? 우리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세속화된 강단은 더 이상 이것을 언급하려 들지 않고, 청중의 눈치를 살핀다. ‘복음이 무엇인가?’ 묻는 이도 없고, 가르쳐주는 이도 없다. 곧 신앙의 기초를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쪽에선 ‘개신교’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비판’과 ‘비난’의 구분을 거부한 채, 육담을 쏟아 붓는다. 우리의 형제는 누구인가?   

‘한국교회의 회개’ 먼저 이 단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 의식의 추상성을 극복해야 한다. 회개는 굴욕이다. 몇몇 유명한 목회자들이 ‘회개의 고백문’을 낭독하는 ‘이벤트’로는 100년이 지나도 회복할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가 굴욕을 느껴야 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굴욕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 살다보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한다. 그러나 그 아무리 지독한 굴욕의 경험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겪은 그것만 하겠는가. 가장 높고 귀한 이름이며, 능력의 큰 이름인 예수가 나무에 못박혀 매달린 그 굴욕만큼 비참할까. 하지만 그 굴욕의 다음, 부활하신 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을 더욱 높이시고, 그 영에 아버지의 영광을 입히셨다.

바울의 고백에 전율을 느낀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러나 우리 성결교단 일부 장로들은 자신의 이권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 얼마나 비 복음적인가? 사람은 누구나 한번 차지했던 것을 남에게 돌려주기란 쉽지않다. 더군다나 권력과 재물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부 장로들은 성서로 다시 돌아가 회개하고, 겸손한 자세로 주의 일을 감당하기를 권면한다.

종교개혁 정신을 되살려 한국교회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말이 ‘성경으로 돌아가자!’이다. 성경중심의 설교, 성경중심의 예배, 성경중심의 교회, 성경중심의 삶을 이루자는 것이다. 복음의 화살촉을 ‘교황과 로마교회’로부터 ‘예수와 그의 몸 된 교회’로 옮겨놓은 것이 종교개혁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종교적 숭배의 반열이 아닌, 내 몸과 마음으로 옮겨놓으려 한 것이 종교개혁의 영적 지향이었다. 예수 이름보다 높아진 것들을 지우자. 예수의 이름을 가장 높이자. 굴욕을 지나 승리가 있고, 예수 이름으로만 능력이 있다. 이 시대가 교회로부터 등을 돌린다 말하기 전, 교회가 세상을 쳐다보느라 등지고 서 있던 ‘십자가의 예수’로 시선을 옮기는 우리 교단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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