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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오스왈드 챔버스예수님 곁에서(요14:9)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2.06 18:24
  • 호수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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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1874-1917)

예수 그리스도와의 우정
예수님은 꾸중하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놀라서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화두로 빌립을 더 가르치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사코 각별히 사귀어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오순절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귀신을 몰아내고 원수를 이기는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눅 10:18-20 참조). 예수님을 이렇게 아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교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우정입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15:15). 친밀한 우정은 세상에 흔한 것이 아닙니다. 이 관계에서는 생각과 마음과 영이 일치합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과 나누는 이 같은 깊은 우정의 경지로 자신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을 받아 살며 주님의 말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참으로 주님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 그 이유는 제자들과 더 깊은 교제를 가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위해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열매 맺는 생활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밀착된 연합에서 비롯됩니다. (요15:1-4). 예수님을 일단 깊이 알게 되면 외롭지도 않고 동정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거침없이 다 쏟아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밀착되어 있는 성도는 자신의 모습 대신 예수님의 모습을 늘 비추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자신의 본성이 깊은 감화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도의 생활에는 고요함과 힘이 조화 있게 균형 잡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님은 자기와 친밀한 교제를 갖는 성도들에게 이런 은혜를 나누어 주십니다.

나의 희생은 산 제물인가 (창 22:9)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생
우리는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사건이 주는 교훈을 자칫 오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원하시는 것이 죽음의 희생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수단으로 한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처럼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 희생이 되게 한다는 모형으로서의 의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주님과 함께 기꺼이 죽으러 간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함으로써 나도 내 생명을 하나님께 희생으로 바친다는 뜻입니다.

산 제물
우리는 하나님이 만사를 다 던져 버리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신다고 믿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지녔던 이 같은 오해를 완전히 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생애에서도 이런 오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든 그 자체를 위해 포기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신 뜻은 참으로 가져야 할 고귀한 주님의 생명을 대신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의 희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생명을 속박하는 일체의 사물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이 속박이 예수님의 죽음처럼 생명을 위해 던져질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께 우리의 희생을 드릴 수 있는 관계를 하나님과 맺게 됩니다. 죽음 자체를 위한 당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산 제물’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건짐을 받고 거룩하게 된 당신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바치는 그 제물을 하나님이 열납하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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