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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 54 )명신익 목사의 3대 헌신(1916년~1968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2.05 17:19
  • 호수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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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곤 목사(문준경순교기념관 관장)

1대 명신홍목사,명신익목사, 2대 명돈의목사, 3대 명치호·치성 목사

평안남도 대동군 김제면에서 명진석 씨의 자녀로 1916년에 태어났다. 명신익은 누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갔다. 12살 위에 형님인 명신홍 목사는 일본대학교와 일본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한 후 총회신학교에서 후진 양성에 매진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총회장을 역임한 목회자요 신학자이다. 명신익은 청년 시절 평양 산정현교회에 출석하였다.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였고, 조만식 장로 등 민족지도자들이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명신익의 삶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주기철 목사와의 만남이다. 그것도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평양 형무소에서의 만남이다. 명신익은 어떤 사건으로 평양형무소에 수감 되었다. 거기서 신사참배 반대로 수감 된 주기철 목사를 만났다. 주기철 목사의 가르침을 통해 명신익은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은혜를 입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청년 명신익은 민족지도자 조만식 장로의 활동을 돕는 일을 하면서 평양 산정현교회 전도사로 교회를 섬겼다. 그는 조만식 장로의 업무와 경호 등의 모든 일을 담당하였는데 조만식 장로가 소련군에 의해 연금되자 명신익에게도 체포령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명신익은 공산당의 체포를 피하여 몰래 월남하게 되었다. 아내와 가족을 둔 채 고생 끝에 서울에 도착했으며 이후 평양에 있던 아내가 큰아들의 손을 잡고 둘째 아들은 업고, 셋째는 임신한 상태로 남편을 찾아 서울로 왔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살아난 아내는 그에게 신학을 하고 전적으로 헌신하라고 권하였다.
당시 부산에는 주남선 목사와 한상동 목사가 설립한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교수진으로는 박윤선 목사를 중심한 한국인 목사들과 한부선 선교사를 비롯한 선교사들로 구성되었다. 명신익은 다대포교회 조사(전도사), 그리고 밀양 삼문교회를 맡아 목회하였다. 목사 안수를 받은 명신익 목사에게 총회는 서울에 교회 설립을 위해 전도목사로 파송했다. 1953년 회현동에서 천막을 치고 교회를 설립했으니 이것이 흥천교회이다(지금은 성원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예배당을 건축하여 1953년 5월에 헌당식을 하였다. 1960년대에 와서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문제는 건축비 상환이었다. 남대문 시장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는데 이들이 주일마다 와서 헌금을 가지고 갔다. 당시 이 교회에 출석하던 김경래 집사(경향신문 편집국장, 장로가 됨)가 자기 집을 팔아 교회 빚을 갚았다. 명신익 목사는 1960년대 기독교 반공운동에 힘을 쏟았고, 한일협정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당시 고신 측 목사로서는 특이한 활동이었다. 그는 1968년 5월, 52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명신익 목사의 장남 명돈의 목사는 장로로 봉사하다가 늦게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 미국 볼티모어 예루살렘교회를 섬겨왔다. 3대 목사가정으로, 명돈의 목사의 장남 명치호 목사는 달라스 영락교회에 시무하고, 차남 명치성 목사는 샌디아고 그레이스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셋째 명치만 박사는 한국의 유학생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명신익목사의 장녀 명돈향 권사의 딸인 이자모 (남편 김 인 목사)선교사는 미얀마에서 사역하고 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을 계승한 것처럼 후손들이 명신익 목사의 신앙을 이어가길 기도한다. 

 

 
1960년대 건축했던 흥천교회. 건축 빚은 당시 경향신문 기자인 김경래집사가 집을 팔아 갚았다.
 
명신익목사의 형, 명신홍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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