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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28)맥락에 대하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2.05 17:06
  • 호수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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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이집트 사람들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라를 만들 때 뇌는 가볍게 제거해버리는 대산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심장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지요. 이제 뇌과학이 많이 발전되어 모든 생각은 혹은 마음은 뇌가 지시하는 어떤 전자기표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합니다. 가령 그림을 보는데 눈이 그림을 보는 순간 그 장면을 뇌로 보내고 뇌는 그 장면을 해석해서 우리에게 보내 그림을 해석하게 만든다는 거죠. 눈이 보고 눈이 본 것을 뇌에게 보내고 다시 뇌가 해석을 해서 나에게 인지하게 하는 그 벼락같은 순간이라니요. 혹시 눈 속에 뇌가 함께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도 시간이 짧으니 말이죠. 찰나가 75분의 1초라는데 그 찰라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어요. 너무나 짧은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수년전의 별빛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알 수 없는 사실도 조금 헤아려지기도 합니다. 어차피 시간도 개념이니 순간, 찰나의 개념을 이해하거나 느끼거나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별빛 우리에게 다가오듯이 거기 어디쯤 서슬 푸르게 존재하고 있을 거예요.

‘본다’는 단어 속에는 그러니까 ‘해석’이라는 단어가 여지없이 함께 동거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해석은 또 경험과도 매우 밀접하겠지요. 학습이 없는 갓난아이가 울거나 젖을 빠는 행위는 뇌와 전혀 상관없는 일일까요? 젖을 빠는 일은 본능이라 해도 우는 행위도 본능일까요?

뇌검사를 하면 슬픔에 대한 지표가 기쁨에 대한 것보다 더 많다구요. 처음으로 세상에 발을 들이밀며 움직임과 동시에 살아있다는 표현이 울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죠. 아, 마종기 선생의 글도 생각이 나네요. 죽은 사람의 얼굴에 마지막으로 흐르는 눈물,병리학자의 말로는 눈물샘이 막혀서라고 하는데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과 연결시키면 블록처럼 딱 맞는 것 같아요.

눈이 엄청나게 착각을 하게하는 것도 착시를 유도하는 수많은 정보를 뇌 마음대로 내보내는 것이니 뇌가 은근 사람의 성향처럼 재미있는 물질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입력은 비슷한데도 그 해석들은 판이하니 뇌의 생김새. 혹은 세포도 사람의 얼굴처럼 미묘하게 다른 것 아닌가,

기억도 그렇죠. 마구 섞이고 섞인 물질이 저만의 사진을 진실인 것처럼 떠억 내놓고 시간 몇 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뛰어 넘으니까요. 기억의 재기발랄함은 남의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그것도 확신시키기 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거든요.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뇌 어딘가에 사람의 얼굴을 인지하는 뇌세포가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주 드물지만 이 세포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 뿐 아니라 자녀들의 얼굴도 잘 몰라서 머리 염색을 특별하게 해서 학교를 보낸다고 하네요. 난데없는 이야기지만 저두 그런 경험이 있어요. 강남 성형외과 주변을 걸어가는데 젊은이들의 얼굴이 거의 비슷해보여서 알아볼 수가 없더군요. 이게 뭐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 흔들었어요. 동양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을 비슷하게 보고 서양 사람들 역시 동양 사람을 거의 비슷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죠.

바둑에서 인생을 보는 사람도 많다고 해요. 저두 바둑을 아주 조금 논적이 있는데 그 때 바둑이 ‘감’이 아닌가, 수가 얕으니 수 계산은 빤한데 뭔가 괜찮은 자리가 느껴지곤 했거든요. 알파고의 대단한 수계산에는 수많은 경험과 계산이 축적된 거지 그만의 감은 없다는 거죠. 그 감을 맥락과 연결시켜 보면 그다지 무리수는 아닌 것 같아요. AI는 사람의 얼굴을 읽는 기능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치와와와 머핀 구별을 잘 못한다고 해요. 눈 코 입의 단순한 조합과 머핀을 구별치 못하는 것은 ‘맥락’이 없어서겠지요. 사람의 얼굴을 읽는 세포나 어떤 특수한 지능이 아니라 전체를 통합하고 다시 재해석하는 맥락을 사람만이 지니고 있다는 거죠.

맥락이 중요한 이유는 삶의 결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죠. 맥락 없이는 이해도 사랑도 용서도 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런 맥락을 AI가 배울 수는 없겠지요.

뇌의 기능을 통합하는 사람다운, 마음, 정신, 영혼,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결국 사람에게만 부여해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는 일일 거예요. 뇌과학 책을 읽으며 과학이 참 섬세한 접근을 하는구나 싶어요. 하지만 그들이 찾는 문제의 답은 우연도 아니고 진화도 아닌 하나님의 창조설에 대입하면 순식간에 해결되는데.....

입춘時네요. 봄의 부활, 단단한 나무의 결을 뚫고 피어나는 꽃의 힘을, 땅을 뚫고 나오는 연한 풀잎의 힘을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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