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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의 “목양신학과 목양철학”(32)제3장 목양신학과 청지기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1.08 17:19
  • 호수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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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예장합동 현리교회, 두란노비전신학연구원 원장)

2. 청지기론

4) 청지기의 교회사역

D. 봉사(막 10:45)
호켄다이크(J.C. Hoekendijk)는 기독교인의 생활과 교회의 봉사적 기능은(엡4:12) 섬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향하여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성령을 근거로 섬김과 봉사를 받을 자를 ‘가난한 자’나 ‘작은 자’라고 말한다. 참된 봉사(디아코니아)는 지극히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받아들이며 이들과 유대를 갖고 그들을 구체적으로 돕고 보살피는 사역이 일어날 때 이를 ‘디아코니아’라고 말했다. 이런 사역은 교회 내적 사역은 물론이고 교회 외적 사역까지 점진적으로 퍼져 실행할 때 진정한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가 연합적으로 일어난다 하겠다. 그리스도의몸된 교회와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부탁과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교회 본질의 네 가지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바울사도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이라고 고백했다. 이는 자격없는 자신을 특별히 사랑으로 구별 선택하시고 속죄의 은혜 속에 하나님 나라 사역에 일익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회와 직분 주심을 감사하여 감동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그가 어찌 충성하지 않았겠는가? 선한 청지기의 사명자, 봉사자가 되기 전 우리가 먼저 갖추어야 할 자세를 바울 사도는 그의 고백을 통해서 오늘의 사역자들 봉사자들에게 일깨워주는 권고의 모습이다.

E. 헌금
감사와 헌신의 내용을 의식으로 나타내는 것이 헌금이다. 대속적 사건으로 구원 얻은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 몸을 대신하는 의미로 주님을 섬기는 표시이다. 그러기에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지(마6:20), 교회에 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헌금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성도의 의무이기도 하다(레27:30). 즉 모든 재물은 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인정하는 의미로 하나님께 당연히 드려야 하는 것이다. ‘헌금’은 재물, 재화 즉 돈을 헌납하는 것이기에 일반인들을 물론 특히 성도들에게도 교회생활에 가장 예민하고 수입, 지출, 관리, 처리 등에 신중해야 한다. 서론에서도 말했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 세계의 만물은 하나님 창조물이며 그가 주인이시다(창1:1-31). 이 물질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위임하셨다(창1:26-28).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에게 자신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일정 분을 드리라고 명령하셨다(말3:7-12). 또한 드리는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를 실천하라고 명령하신다(고후9:6-7, 마7:16, 갈6:7). 예수님은 헌금을 하늘나라 창고에 보화를 쌓아 두는 것과 같다고 가르치셨다. 그러기에 헌금할 때 기도와 준비함으로 드려야 하며(고후9:5),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보상을 마음에 그리며 즐겨내도록 신앙적 마음을 생활화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청지기의 자세이다.(고후9:7)
성도들의 헌금 중에 가장 중요한 헌금은 십일조 헌금이다(레27:30-34). 이 헌금은 성도의 의무금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늘나라 시민이며 그 통치와 섭리 속에서 살기에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적 행위이다(빌3:20). 십일조의 유래는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20) 했다. 아브람은 전쟁에 이기고 그 전리품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이다. 그 후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것을 서원한 바 있고(창28:22),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십일조를 드리도록 율법으로 정해 놓았다(레27:29-30). 십일조는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레 27:30) 했으므로 그 뜻은 ⓐ 인간의 모든 소유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데 있고 ⓑ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그 십분의 일이 성물이 되는 바 이는 처음을 바침으로 나머지도 다 거룩해진다는 뜻과 거루구한 것과 속된 것을 항상 구별할 수 있는 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성결된 삶을 지향하도록 하며 ⓒ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저주받은 당에서 나는 모든 소득과 그것을 드리는 자가 함께 성별되는 대속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 땅의 것을 가지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마6:19-20). 한마디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고 그만 경배하며 그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역사와 미래적 복과 영화를 주신다는 약속의 징표적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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