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8.8 토 07:58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배치영 목사의 “목양신학과 목양철학”(31)제3장 목양신학과 청지기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1.02 16:06
  • 호수 468
  • 댓글 0
배치영 목사(예장합동 현리교회,두란노비전신학연구원 원장)

b.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모든 교육에는 바라는 목표와 목적이 있다. 신앙적 교육에도 지향하는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①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구원주)임을 정확히 알고 영접하여 믿게 하여야 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이는 교회 교육의 최대 목표이며, 기초 교육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어떤 재난 풍파에도 견디듯이 이 구원적 교육이 제대로 순조롭게 달성되어야 하나님 사람으로 성숙된 신앙인 답게 청지기 사명도 잘 감당할 수가 있고, 거치른 세상에서 복음적 사역이나 빛과 소금(마5:13-14)으로 마지막 때에(딤후3:1-5) 충성된 종이 될 수 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이일에 주안점을 두고 성도들을 교육했음을 오늘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단단히 명심해야 한다(행5:42).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통해 공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므로 교회 교육은 반드시 성경을 통해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계속적인 지도 및 교육을 해야 한다(마28:18-20).
② 하나님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도록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인격과 성품을 닮을 것을 가르치고 강조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라고 했고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권면했다. 그는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라고 했으며 외식적 율ㄹ법에 묶여 있는 히브리인들 곧 유대인들에게 참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면서 신앙인의 길을 가라고 권고하기도 했다(히12:1-3).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라고 했다. 교회 교육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며 이것이 온전한 구원적 인격체이다.
기독교 교육이란 그리스도의 모습까지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본래 인간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창1:26). 따라서 기독교 교육은 잃어버린 인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전히 의를 행하고(딤후3:17), 원까지도 사랑한다면(눅23:34) 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성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③ 교회 교육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즉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이며(요4:19), 아울러 그의 성품과 인격과 삶을 닮아 가는 것이고(빌2:5-11), 최종 목표는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 주님이 맡겨주신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일꾼으로 양성하는 것이다(마25:23-24).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사명자는 의무만 가지고 자신의 의대로 일해서는 안 된다. 바른 교육에 의한 자기 성찰과 철저한 말씀의 교육으로 예수님이 3년간 제자들을 양육하듯이 다년간 실천적 훈련을 통해 잘 다듬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차후 교육적 사명자까지 될 수 있는 것이다(딤후2:1-4).

C. 친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 백성들의 유기체이며 한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신령적 공동체이다. 지상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실천하고 구속적 사건을 형성해가는 그 자신의 독특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사명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데 꼭 필요한 필수 조건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씀선포(케리그마), 둘째는 교육(디다케), 셋째는 친교(코이노니아), 넷째는 봉사(디아코니아)이다. 이 네 가지를 잘 조화하면서 실천했던 교회는 오순절 성령이후 새로워진 초대교회였다(행2:42-47). 니 네 가지 사명 중 교회생활에 성도들 간의 친교는 교회부흥과도 직간접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친교(코이노니아)는 같은 뜻을 가진 성도의 교제이기에 성도의 고통 혹은 성도의 사귐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또한 본래적 뜻은 어떤 물건을 공동으로 나누어 가진다든지(행2:44-45)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는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종합한 표현이이다. 이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 얻은 바 신령적 구속과 은혜적 선물을 자기와 함께 사귀을 이루는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어 가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라고 사도 요한은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과 같이 인간들끼리의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친교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서적 친교(코이노니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토대 위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일어나는 친교(코이노니아)는 남녀노소, 연령, 사회적지위, 인종, 민족과 국가 등의 이해관계로 야기되는 장벽을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한다. 그리고 저들이 다같이 한 복음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을 이루며 새로운 세계를 펼쳐 나가는 것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