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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니우스 심층분석 (19)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1.02 15:50
  • 호수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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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웅 교수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전 총신대학교 총장, 본지 논설위원)

이제는 프로테스탄트의 다른 교회들에 속하여 신앙생활을 계속하도록 권고하면서, 형제연합교회의 6가지 신앙의 유산이 보존되기를 희망한 내용 가운데 3번째가 ‘교회훈육’이었다(진리 사랑, 성경 말씀에 충성, 교회의 훈육, 모국어 보존, 교회연합 정신 등).

  넷째, 형제연합교회는 참된 ‘교회의 자유’, 즉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신앙공동체였다. 형제연합교회는 한 번도 권세를 가진 지역 성주(왕)의 보호 아래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공동생활의 저변에서 국가 권력의 의지에 대항하여, 언제나 신앙의 박해를 받았고, 그들 신앙적인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하나님말씀의 순종과 주님에 대한 신실성과 그들 형제들의 단순한 신앙고백의 용기를 가진 증거에 의존되어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내적인 자유는 국가(권력)편에서 간섭하는 모든 공격에 대항하여(로마가톨릭의 세력) 그들의 표면적인 자유를 보증하는 힘으로 작용 되었다. 이와 같은 내적인 자유 안에서 형제연합교회는 형제자매로부터 확고한 질서를 가진 살아 있는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자신들에게만 임할 뿐 아니라, 전 삶에서 실제로 효력을 갖게 되도록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삶의 주인으로 인정된 그곳에서 인간은 각자 현세적인 권세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될 수 있었다. 거기서 사람들은 그의 구세주의 멍에를 짊어지기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예수 때문에 굶주리고, 고난과 박해와 고문당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 미래적인 영광을 높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주님이 유일한 만물의 주(主)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형제연합교회는 이러한 자유의 보존에 종교개혁의 교회들보다 다른 더 위에 높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분명하였다. 물론 형제연합교회의 1세대들은 세상에 대하여 매우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당연했다. 수도자적인 이상론의 모습으로 주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러한 생각들에서 허물어지게 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방적인 통찰은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서도, 형제연합교회가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사회적인 책임에 관한 인식). 이러한 형제연합교회는 이제 사회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적으로 기독인의 순수한 자유를 보존하기 위하여 힘썼다. 이러한 자유 안에서 이 형제연합교회는 마침내 하나님과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에 대한 책임(정의와 평회)을 짊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이중적인 삶을 만들지 않도록 힘썼다. 이러한 결단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인 자와 부활한 자와 장차 다시 오실 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강화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신앙공동체로서의 형제연합교회가 보여준 신앙의 특징은 위의 4가지로 평가되지만, 근본적으로 초대교회의 사도적인 신앙공동체를 염원하였고, 복음이 말하는 형제 사랑과 형제 평등과 신앙의 자유를 실천하고 경험하는 참된 복음적인 교회(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결속을 위하여 교회의 훈육(사랑의 지도)을 철저하게 실천한 것은 코메니우스 시대에 이르러 가장 강하고 번영한 교회로 발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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