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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원리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가르침 또한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서 배려하는 ‘실천적 지혜’가 담겨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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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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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잉과 결핍 사이

우리는 어떤 일을 행동하고, 덕(德)을 실천할 때,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그 선택의 주체는 자아(自我)에게 있지만, 그 행위로 인해 수반되는 여러 가지 ‘사태(State of affairs)’는 타자(他者)에게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타인의 배려를 위해서 우리는 때로 행위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더더욱 행위의 중립적인 태도 곧 ‘중용의 덕목’이 요구된다.

중용(中庸)의 어원은 그리스어 ‘Sopho-rosune’에서 유래한다. 이 말이 지닌 의미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음”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절제의 덕‘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것을 피하고, 적절하게 행위 하도록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우리 육체의 상태 대부분이 과도함이나 부족함에 의해서 파괴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용의 이론’을 전개해 간다. 그가 말하는 적절한 행위는 곧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중용을 의미하는데 이는 건강을 산출하고, 영혼의 상태에 있어서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타인(他人)에 대한 겸손을 표현함에 있어서 부족하면, 무모함이 될 것이고 너무 지나치게 많으면 비겁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는 ‘용기’가 있으며, 인색과 낭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절약’이 있다. 그래서 그는 중간적인 것으로서의 중용의 진정한 의미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것에 대하여, 적절한 목적과 방식으로” 실천할 것을 주장했다. 또 비근한 예를 든다면, 우리가 행하는 ‘사랑’에 대해서도 너무 과도하면 이는 집착으로 이어지고, 너무 부족하면 무관심으로 퇴색된다. 그래서 사랑에도 적절한 방식과 목적으로 행했을 때, 그 사랑의 진정한 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 프로네시스 (Phronesis)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실천이성’을 요구한다. 이는 곧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올바른 행위를 함에 있어서 한 개인의 본성이 잘 작용하도록 도움으로써 자신의 덕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실천이성은 ‘실천적 지혜’ 곧 “프로네시스(Phronesis)”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지혜는 간략하게 말하면, 어떤 행위를 할 때 “심사숙고”라는 사유의 능력을 통해 행위 하는 것, 곧 ‘이성(理性)’의 칸막이를 거쳐서 도덕적 행위를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보다 다 사유하는 능력을 토대로 합리적 행위를 산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사회적 행위들을 산출한다. 이 때 우리들은 그 행위를 적절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때,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행위도 지나친 과도함으로 빚어지는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 “적절한 태도”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할 때, 그 관계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중용의 덕’과 ‘실천적 지혜’를 제시한다. 바로 이 둘의 덕목을 모두 포괄하는 실천원리가 [성령의 열매]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열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갈 5:22~23)”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과 신앙의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들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덕목이다. 이 열매는 모든 이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교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성령의 열매는 이기적인 인간 내면의 욕구를 억제할 수 있게 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타인(他人) 중심의 사고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삶의 지표이다.

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가르침 또한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서 배려하는 ‘실천적 지혜’가 담겨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타인(他人)이 마음껏 빌려가서 생명의 양식처럼 읽을 수 있게 하는 “남을 위한 삶”을 즉 “앨트루이즘(Altruism)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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