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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의 “목양신학과 목양철학”(29)제 3 장 목양신학과 청지기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2.16 16:26
  • 호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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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예장합동 현리교회,두란노비전신학연구원 원장)

2. 청지기론

② 예배의 요소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행 2:46) 했는데, 오늘날 예배는 다소 형식화되고 간소화된 점이 없지 않으나 이 예배들은 구약적 예배요소들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춤과 노래, 악기 연주와 성경의 낭독, 죄의 고백과 용서, 헌물과 헌납 등이 있었다. 신약에 와서는 떡을 뗌과 성도간의 교제 등이 추가된 반면 많은 순서가 생략되거나 간소화 되었다. 생략되거나 간소화 되었다고 잘못된 예배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예배순서의 다소보다 성령님 임재의 예배가 되어야 참예배라 할 수 있다. 오직 성령이 함께함으로 진정한 회개와 기도의 응답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구원의 즐거운 속에 참다운 찬양과 자발적 헌금,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진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예배를 생동감 넘치는 예배로 바꾸어 놓으며 형식과 순서에 관계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예배의 요소를 몇 가지 빼놓았다 해도 성령을 모시지 않고, 성령이 내주 간섭하지 않는 예배는 참 예배라 할 수 없으며 이런 예배는 형식화된 외식적 죽은 예배라 할 수 있다.
산 예배, 참 예배에는 예배의 요소를 두 가지로 들 수 있는데 하나는 내적 요소요, 또 하나는 외적요소이다.
㉠ 내적요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히 11:4). 창세 때 아담과 하와 이후 첫 예배주관자들이 가인과 아벨 두 형제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똑같이 제사(예배)를 드렸으나 결과는 상반된 모습이 되었다. 형 가인은 버림을 받고, 동생 아벨은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으니’(히11:4), 이를 보건데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는 믿음의 예배이다. 아무리 거룩한 형식을 갖추고 귀한 예물을 드릴지라도 믿음이 수반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그 예배를 열납하지 않으신다.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간의 신뢰적 관계를 말하는데 이에 못지 않게 더 중요한 예배의 내적요소는 성령임재이다. 성령은 예배의 주도자이다. 성령이 함께 할 때 예배는 생동감이 넘친다. 설교자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설교해야 하고 기도하는 자, 찬양하는 자, 회중 모두가 성령에게 사로잡혀 예배해야 한다. 이런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로써 깊은 은혜의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초대교회 예배의 특징과 장점은 늘 성령과 함께하는 예배를 드린 것이다(행2:4, 8:17, 10:44).
㉡ 외적요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요일 1:9). 인간의 본능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자 한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처절한 공격과 자신의 자위 능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사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죄의 약점을 잡지 않으시고 한 번 사하신 죄는 기억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는 자는 즉시 사해주시며 그를 의롭다고 의인 칭호를 주신다. 그러므로 신령하고 진정한 몸으로의 산제사를 드리고자하는 성도는 제사 즉 예배에 임하기 전 신실한 정신과 마음, 정돈된 몸으로 갖추는 선결과제이다.(마5:23-24) 예배의 외적 요소로 죄의 고백을 드린 성도는 찬양과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했다. 찬양은 죄의 사유에 대한 감사와 일상생활을 보살펴 주심에 대한 감사 또한 피조물로서 조물주 창조주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드리는 것이다. 때로는 삶에 지치고 고달 퍼도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불신앙적 행위이므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를 불러들이지만 감사와 찬양은 오히려 불우한 환경과 처지를 바꾸어 새로운 소망적 삶을 갖게 한다.(욥1:21, 행6:25-26). 그래서 찬양은 곡조있는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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