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2.26 금 09:13
상단여백
HOME 논단 데스크칼럼
청소년들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이젠 교단의 시선을 아가페로 성육신시켜야 한다. 웅장한 건물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장년층에게 맞췄던 시선을 어린 청소년들에게 돌려야 한다. 청소년에게 “아모르 꾸투아르”, 즉 ‘궁정풍의 사랑’을 하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8.20 09:56
  • 호수 0
  • 댓글 0

     

 

세계성결연맹 청소년 미션캠프 예산 부족

애타는 심정으로 청소년 선교 박차 가해야

세계성결연맹 청소년분과(위원장 이형로 목사)가 주최하고, 교단 교목단(단장 원광호 목사)이 주관하여 실시한 제25회 세계성결연맹 청소년 미션캠프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신대에서 열렸다. 이행사에 한국, 대만, 일본 등 3개국의 청소년 400여명이 참석했다. 더 많은 신청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원 제한을 한 이유는 초과 인원을 수용할 시설 부족과 재정적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청소년들에게 성결교단의 신앙을 제대로 전수할 수 있었고, 회심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 자리였다. 이 행사에 대해 “앵콜”, 즉 “앙꼬르”라고 외치고 싶다. 불어 “앙꼬르”라는 말은 밥 먹을 때, 주인이 “더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앙꼬르”라고 말해서 “조금 더 먹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조금 더”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앙꼬르”를 할 수 없다. 이 좋은 행사가 후원 부족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루터는 “면죄부 팔아 성당 건물 지으면 그 벽돌에서 성도들의 피울음 소리가 들린다”라고 말했다. 교단 관련 건축 붐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돈들이 건물에 투자되는 동안 정작 성결교단의 미래를 좌우할 청소년들의 양육은 소외될 수 있다.

재정적인 부족에 대해 이형로 목사는 “초창기 이 행사는 교목들이 돈을 모아 준비했다”면서 “지금도 재정적 후원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효창 목사(경복비지니스고등학교)는 “성결교단이 학원 선교를 너무 소홀하게 생각한다”면서 “건축이나 군목단에 투자하는 것의 아주 일부라도 교목단에 투자하면 청소년 선교가 잘 되어 미래 성결교인이 급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이젠 성결교단 청소년들에게 ‘궁정풍의 사랑’을 할 때이다. 그래야 교단 미래가 있다.

라캉은 “아모르 꾸투아르”, 즉 ‘궁정풍의 사랑’을 말했는데, 기사가 하는 사랑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보면 돈키호테가 기사가 되기 위해 결심을 하면서 준비를 하는 게 있는데 먼저 갑옷을 준비하고, 그 다음에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도 준비로는 아직 기사가 아니다. 세 번째가 중요한데, 여자가 필요하다.

기사는 사모하는 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여자를 실제로 소유해선 안 된다. 불가능한 대상의 여자를 사모해야 한다. 그래서 기사가 사모하는 여자는 주로 자기가 모시는 상관의 여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실제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여자를 이상화시켜 불가능한 대상으로 삼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가가서는 안 된다. 다가가서 그 여자와 진짜 사랑에 빠지는 순간엔 다 끝나 버린다. 쾌락의 한계를 설정해 놓고 어떤 영역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애태우는 사랑이 ‘궁정풍 사랑’ 혹은 ‘고귀한 사랑’이라고 한다.

사실은 실제 여자는 그런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자기가 선택한 실제 여자는 욕심이 많은 여자일 수도 있고, 외모가 못생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여자 속에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을 다 투영을 한다. 투영을 하는 순간 여자는 실제 여자가 아니라 숭고한 대상으로 뛰어오른다. 자기가 범접할 수 없는 ‘딩(Din)’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물(物)’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원초적인 사랑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 물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실재다. 남근이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은 ‘딩’하고도 통한다.

이렇게 뛰어 올라가는 것을 라캉은 ‘승화’라고 말한다. 라캉을 전공한 김석 교수는 “승화는 하찮은 대상을 실재의 위치에 놓음으로 고양시켜 놓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딩’으로서 자기를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를 내가 내 것으로 만들어서 범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저 여자한테는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해야 내 사랑을 꽃피울 수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궁정풍 사랑’이다. 그래서 남자가 이상적인 성녀로 만들어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올라가지 못하는 측면하고 또 이것을 끌어내려서 같이 누리려고 하는 역설적인 관계가 둘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둘이서 끌어와 가지고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에로틱이 아니라 신성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가장 이상화된 사랑이고 어떻게 보면 실제와 현실의 구분을 다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주 커다란 이상적인 사랑이 되는데 이런 것을 ‘아가페’ 형태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들어왔다, 구원을 위해서 ‘딩’의 위치에 있는 분이 ‘딩’의 위치를 버리고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딩’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다. 이것 자체가 전형적인 사랑이다.

성육신 하셨기에 사랑이라는 것이 인류를 향한 구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남녀 간의 하나됨의 사랑인 에로스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의 초월적인 사랑인 아가페로 가능해질 수 있다.

 

이젠 교단의 시선을 아가페로 성육신시켜야 한다. 웅장한 건물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장년층에게 맞췄던 시선을 어린 청소년들에게 돌려야 한다. 청소년에게 “아모르 꾸투아르”, 즉 ‘궁정풍의 사랑’을 하자.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