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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의 복음사역(10)예수의 선포: 하나님 나라의 복음
  •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
  • 승인 2019.12.11 16:55
  • 호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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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증언이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불에 관한 메시지는 그의 설교의 중심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세레자 요한의 설교를 계승하면서 세레자 요한이 예언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가 충족되었음을 말씀하신다. 예수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설교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하신 후 시기를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때로 오해하였다. 누가는 다음같이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이까”(행 1:6).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제자들의 설교는 전혀 달라졌다. 성령으로 새로움과 권능을 받은 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사실을 증거하였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2.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로서의 하나님의 나라

그러나 예수께서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적인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수행되는 영역이다. 유대인으로서 나사렛 예수는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자신의 인격과 생애 속에서 성취되는 것을 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종교적인 율법이나 제사에 의하여 인간에게 다가오시지 않고 이제 메시아인 그의 아들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인간에게 찾아 오신다. 예수는 옥에 갇힌 요한의 질문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20)에 대하여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2)고 대답하셨다.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의 나라 사상은 그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새롭게 동터오는 평화의 시대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속적 통치가 이 세상에서 새롭게 실현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의 통치 하에 있는 백성을 그분이 신원하셔서 그들에게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다 주신다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현재인 동시에 아직 완성을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미래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받아야 할 영역에 관계된다.

하나님 나라는 의인(義人)을 신원하며(vindicate) 궁극적인 정의를 실현한다.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성장 발전하면서 결국 우주적 실재가 된다. 유대인이 기대한 하나님 나라는 강력하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정치적 나라인 데 반하여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성장하여 모든 것을 포괄하게 될 때까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그 모습은 유대인의 일반적인 기대를 반영하게 된다. 의인들은 원통함을 풀 것이며, 악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며, 평화가 수립될 것이며 사탄이 패배함으로서 도덕적 윤리적 질서가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실재가 아니라 영적 실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공동체적인 열매로서 나타난다. 예수의 부활 이후 하나님 나라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설립된 초대교회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이방선교를 통하여 확장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하나님의 때요 하나님의 권한이라고 말씀하신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행 1:7). 예수는 복음전파의 때가 시작되었고 그 사명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언이 되리라”(행 1:8). 사도행전의 선교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역사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영접하는 개인과 공동체 가운데서 겨자씨 처럼 파편적으로 구현되는 구원과 평강과 희락과 사랑의 공동체이다.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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