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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Ph.D.) 논문 연재(8)기독교 인문주의를 꽃피운 뒤러의 걸작들
  •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 승인 2019.11.14 15:04
  • 호수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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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숙 박사, 성공회대(Ph.D.) 한신대(M.Div.) 부산대 수학과

뒤러 시대에 정신적인 권위였던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는 1503년 출판했던 자신의 논문 『한 기독교 기사의 편람』에서 ‘그리스도의 기사’를 주제로 삼아,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마치 한사람의 병사처럼 자신만의 어렵고 좁은 길을 가져야 한다고 논했다. 그는 ‘우리의 싸움’의 정신적 무기(고후 10:3절-4절), ‘악마와 싸우는 싸움’(엡 6:11-17, 살전 5:8) 등 바울의 말을 인용하며 기독교신자들을 독려했다.

1510년부터 1520년까지는 뒤러의 생애에서 가장 ‘인문주의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뒤러 판화예술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뒤러의 동판화 중에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Knight, Death, and Devil), 원제 기수((Rider)>와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St. Jerome in his Study)>는 <멜랑콜리아 I(Melencolia Ⅰ)>과 더불어 뒤러의 ‘최고 동판화’(Meisterstiche)로 알려져 있다. <기수>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견고함으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니체와 히틀러에 의해 영웅적 모델 또는 민족주의적인 이미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리고 불가타성서(Vulgate)의 번역자로 당시 인문주의자들에게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의 정형으로 여겨졌던 히에로니무스를 그린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종교적 명상과 관조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기수>에는, 위풍당당한 말을 타고 어깨 위로 창을 받쳐 든 무장한 기사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해골이 놓여있는 복잡한 길을 전진하고 있다. ‘죽음’과 ‘악마’가 모래시계와 곡괭이를 들고 튀어나와 위협과 유혹을 하고 있지만, 기사는 전혀 미동도 없이 앞만 본채로 배경 멀리 미덕의 산을 향해 나아간다(창 19:17). 기사의 발 아래로 뒤러의 ‘성서서한집’에서 ‘진리’(Veritas)를 상징하는 개 한마리가 기사를 따라가고 있는데, 말의 뒷발굽 사이에 종교적 열성을 상징하는 불도마뱀은 개와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기사의 뒤쪽 창끝에는 “여우꼬리와 함께 있는 사람(Fuchsschwänzler)”, 즉 위선자를 나타내는 여우털이 매달려 있다. 왼쪽 하단의 해골 앞 석판에는 구원(Salus)을 상징하는 ‘S'가 제작년도 1513 앞에 새겨져 있다.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에는 뉘른베르크의 인문주의자 첼티스(Konrad Celtis)가 말한 “영혼의 창으로서의 눈(oculi fenestra animae)”을 표현한 둥근 눈알무늬 창(bull's-eye window)을 통해 들어온 성령의 빛이 성인의 방과 머리 위를 비추고 있다. 그런데 전면 천정에 커다란 박(gourd) 넝쿨 조명등이 보이는데, 이는 뒤러가 당시 독일인문주의자들 모임에서 자주 논쟁되었던 히에로니무스의 오류[욘 4:6의 “키카욘”을 ‘아이비’(ivy)로 잘못 번역]를 그려 넣은 것이다. 뒤러는 이들 작품에서 종교적 열성만 가지고 진리를 등지는 위선자를 경고하고 성인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직 성서의 진리를 따라 구원을 받자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 아닐까. 신에 의해서도 금지된 마녀사냥이 기독교교회의 이름으로 자행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있었지만, 뒤러 시대 남성 인문주의 학자들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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