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4.23 금 19:06
상단여백
HOME 논단 쓴물단물
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1.13 14:53
  • 호수 463
  • 댓글 0

“내 품이 간장 종이에 불과한데 항아리에 담을 만큼의 축복이 생긴들 무엇으로 빨아들일까” (박라연의 시, 상황그릇) 추수감사와 새해 준비의 계절인 11월은 우리로 하여금 2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내 품과 하나님의 축복이 그것이다. 진시황의 품은 중국을 통일했지만, 영생불사의 축복을 담지는 못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품에 동북아의 패권장악이란 축복은 어림없었다. 실개천에 하늘이 비췬다고 태양을 가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이벤트’라 부른다. ‘사건’, ‘계기’, ‘행사’ 라는 의미의 이벤트는 하나의 ‘사건’은 될 수 있어도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이벤트란 하나의 경험일 뿐 그것이 모든 신앙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 병고침의 기적도, 특별한 사고에서의 기적적인 구출도 이벤트로써 복음을 향한 길안내 역할을 할 뿐, 그것이 복음의 전부라고 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오직 복음만이 진리고, 말씀이 이벤트보다 우선한다.
추수감사가 이벤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출애굽 이후 제정된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은 이벤트가 아니라 해방, 구원, 약속, 미래 그 자체였다.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럽고, 지도자들이 갈팡질팡하며, 교회마저 희망의 빛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금, 우리의 추수감사절의 모습은 이벤트 차원을 뛰어넘어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믿음이란 종교개혁적 믿음을 다시 회복하는 것에서 새로운 틀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1세기에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신앙적 자질인 ‘성결’과 ‘재림’ 신앙의 차원에서 추수감사절을 더욱 의미있게 재해석하고 적용하는 실천을 반드시 덧붙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일선 개교회만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각 신학대학, 교회연합기관, 주요 단체들 또한 교회의 지체로서 어떻게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부흥했던 시기는 문화를 변혁하는 공동체로서의 위상이 확실했다. 오늘날 교회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문화를 따라가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 아닌가? 문화를 따라가려하는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 이벤트이다. 한 마디로 ‘놀기’와 ‘뽑기’로 인기와 재미를 통해 트렌디한 교회와 스타 목회자를 앞세워서 물량공세를 펼치는 모습이 다분하다. 놀기와 뽑기로는 한계가 있다. 추수도 없고, 감사도 사라진 냉랭한 사회 속에서 부흥을 꿈꾸는 교회에게 답이 있다면 오직 하나, 예수 십자가의 도를 단순하게 급진적으로 실천하는 것뿐이다. 목수이신 예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는 어부가 될 때 물고기 뿐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다. 놀기, 뽑기에 익숙한 교회여!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주님께 맡기자!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