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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0.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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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가지고 장난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수한 말에 대해서는 말로 사과하면 해결되었다. 몸 가지고 개그를 한 적이 있었다. 몸 개그를 보는 데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라도 웃기고 웃을 수도 있구나 이해하면서 넘겼다. 요즘 글 가지고 장난하던 사람둘이 많이 있다. 익명의 나무 뒤에서 날리는 수많은 글화살에 어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심각한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교수들이 글로 장난을 하면 학생들이 병들고 학교가 죽는다. 지식인들이 장난질을 하면 사회가 병든다. 정치인들이 장난질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 경제인들이 장난질을 하면 노동자가 죽는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책임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쌍봉 낙타이다. 인간의 양심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가당찮은 것인지는 지식인의 허위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양심은 늘 선택에 의해서 변질되고, 변질된 양심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방관하는 눈이 되고, 가해자들을 편드는 손이 된다. 양심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책임이다. 인간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할 때에만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양심을 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자기의 성취욕과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서 부흥이란 이름으로 교회를 키우는 자들이 비신앙적인 지도자들이다. 이런 양심의 타락과 변질을 막고, 책임적인 양심의 부활을 촉진시키는 사회적인 제도가 바로 언론인 것이다.  언론은 그 어떤 집행 권력도 없고 경제적 권한도 가지지 않았지만 양심에 근거한 기자의 문장 몇 줄이 비양심적인 사회를 일깨우는 거대한 심판의 불이 된다. 언론은 새로운 창조의 빅뱅을 시작하는 발화점이며, 사회의 위선과 부정을 깨끗이 씻어내는 풍랑이다. 언론은 시대의 등불이자, 들판을 태우는 들불이다. 언론이 잠들면 그 사회는 썩는 것이다. 언론들이 썩다 못해 독으로 가득한 바다와 같다는 우려를 정작 언론은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100년 전 한국기독교는 이 땅에 글을 읽고 쓰게 하여 차원이 다른 세계관과 사고력을 제공했다. 외솔 선생은 성서보급이 한글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연구하여 발표하기도 했다. 교회의 언어는 살리는 언어였고, 목사들은 가장 앞장서서 말과 글로 사람을 살리는 사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옥 신춘문예에 공모하듯이 저주와 심판과 정죄와 분열의 언어가 강단을 물들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갈등은 지도자들의 언어가 만든 작품이다. 종교개혁은 언어의 개혁이자, 언어의 공유에서 가능했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지도자들의 언어에 달렸다. 한국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래를 열어줄 언론, 사회를 치료하고 교회를 살릴 새방언을 말하는 교회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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