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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니우스 심층분석 (11)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0.17 15:48
  • 호수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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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교수(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전 총신대학교 총장, 본지 논설위원)

3) 코메니우스의 학문에 관한 현대학자들의 평가
먼저 종파 간에 서로를 파멸시키려는 의도를 가지는 한, 종파들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욱 늘어났으며, 적대감을 가지고 없애려 했으나, 더 날카로워지기만 했다는 것을 지적하게 된다. 학문적인 작업은 많으면 많을수록 학문은 더욱 엉클어져 갔기 때문에, 이제는 먼저 병폐를 찾고, 치유책을 찾으며, 이 두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지금까지의 개혁의 시도들이 종교, 정치, 학문의 어느 한 특정한 부분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바로 잡는 개혁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이며, 온전한 개혁은 이제 이 3가지 사회적인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체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삶의 개혁이며, 그것을 세계개혁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면 코메니우스가 그토록 세계개혁을 희망했던 7권으로 구성된 문서들의 내용과 관련하여, 오늘날 유럽의 신학자들은 코메니우스의 학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특히 이러한 평가들에서 우리는 코메니우스의 신학의 학문적인 위치와 의의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독일 본(Bonn)대학의 헤닝 슈뢰어(H.Schroeer)교수는 코메니우스를 그간 잊어버렸던 실천신학의 학문적인 대가(大家)로 평가하였다. 바젤의 조직신학 교수인 밀릭 로흐만(Milic Lochman)은 코메니우스를 세계의 개혁을 희망했던 신학자로 불렀고, 교회연합적인 종교개혁의 대표자로, 세계를 개혁하려는 희망의 신학자로 평가하였다. 튀빙겐 대학의 종교교육학 교수인 닢코(K.E.Nipkow)는 코메니우스의 신학을 종말론적인 행렬로부터 전진하는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신학의 전주자(前奏者)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화란 우트레히트 대학의 교회사와 선교학 교수, 판데어 린데(Van der Linde)는 코메니우스의 신학을 ‘귀환의 신학’으로 명명하면서, 코메니우스는 교회연합운동을 위한 현대적인 의미를 지닌 신학자로, 그리고 선교학자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의 ‘코메니우스대학’(브라티스라바)의 조직신학교수인 이고를 키씨스(Igor Kissis)는 코메니우스야 말로 샤르뎅이나, 몰트만과 같은 현대 신학자에 버금가는 인물로 보았으며, 또한 현대신학의 선구자라고까지 평가하였다. 그리고 독일 복음대학의 교육철학 교수인 클라우스 샬러(K.Schaller)는 코메니우스의 교육학은 인간의 인간성 형성교육, 또는 인간 안에 잠재한 능력을 끌어내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창조세계의 보존과 관리와 하나님의 나라)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의 교육을 이해하였고, 그야말로 그는 교육하는 신학자이며, 또한 실천신학자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유럽 신학자들의 평가를 전제할 때, 코메니우스는 신학자가 분명하며, 그러나 17세기의 전통적인 교리체계를 따라 신학체계를 제시했던 조직신학자이기보다는 신앙적인 삶을 전제한 행동하는 신학, 또는 실천지향의 신학을 제시한 실천신학자가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종교개혁의 전통적인 신학체계를 전적으로 따르면서도, 종교개혁신학이 교리논쟁과 더불어 지나치게 사변적이며, 스콜라주의적인 상태로 회귀하여, 서로가 정통임을 주장하며, 다름만을 고집하고 대립하던 정통주의적인 신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행동 실천적인 신학을 강조한 실천지향의 신학자가 분명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교육의 문제를 앞세워 “인간사물의 개선에 대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제언”(Consultatio catholica)이란 미완성대작을 직접 만든 것은 전적으로 그의 신학적인 사고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것이며, 17세기의 전환기에, 새롭게 일어나는 이성 중심적인 사고와 자연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기독교의 하나님의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교리대립(루터파와 칼빈파)의 변증일변도의 방법만으로는 전혀 그 시대의 인본주의적인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종교 개혁적인 구원신학(칭의론)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직시하고, 창조신학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구원의 문제를 새롭게 해결하는 새로운 신학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실천 지향적인 신학의 특징은 역시 종교개혁자들이 고집한 어거스틴적인 종말론적인 신학의 한계(현세와 종말의 관계에서 지나친 이원론적인)를 뛰어넘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천년왕국(주기도문)의 종말론을 지향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우주론적이며, 창조신학적인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신학적인 통찰은 20세기 초엽에 화란의 개혁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가 하나님의 주권영역을 일반은총의 영역을 포한 한다는 사실을 밝혀준 것과도 일맥상통하며, 오히려 그 일반은총의 영역(자연신학)을 코메니우스의 신학은 벌써 하나님의 계시에다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예리한 포괄적이며, 개방성을 지닌 미래지향적인 신학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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