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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여행(9)베데스다(요5:1-9)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0.17 15:46
  • 호수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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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성 목사(송현성결교회)

요한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일곱 가지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1:19부터 12:50까지의 연속적인 기사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시는 일곱 가지 표적 가운데 세 번째 표적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초기사역을 갈릴리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에 요한복음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의 세 번째 표적을 기점으로 하여 유대인들에 의하여 본격적인 배척이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유대인이라는 말이 70회 사용되고 있는데 한 번의 긍정적인 의미와 한 번의 중립적인 의미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과 논쟁을 벙리고 있는 유대인들은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추정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하였는데 헬라어로 <헤오르테>입니다. 유대인들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는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인데 이 절기에는 예루살렘반경 22km 이내에 사는 모든 성인 남자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순례하도록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인 삼대주요절기 이외에도 부림절, 수전절, 헌목절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히브리어로 <하고>로 부르는 이런 날들은 엄숙한 절기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축제이기도 하였으므로 명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 모이는 숫자는 수십만 명이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런 잔치분위기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가장 외롭고 불쌍한 한 병자를 만나십니다. 물론 제자들도 동행하지 않으셨습니다. 38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38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였던 기간과 동일합니다. 인간들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의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중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을 예수님은 조용히 찾아 와 주셨고 만나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의 집입니다. 지금은 베데스다못가는 물이 말라있고 모형은 복원되고 옆에는 성 안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에는 전설이 있는데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연못가에 천막을 치고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병이 오래되어 가족까지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도와줄 것을 기다리며 희망이 없이 누워있는 것입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 있지만 그곳에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었습니다. 남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질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이기심만 있었습니다. 38년 동안 병 낫기를 기다렸지만 낫지 못하고 연못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로 앞 다투어 연못으로 내려가려고 했기 때문에 물이 움직일 때면 아마도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절박한 상황과 더불어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타인의 사정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세상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희망이 상실된 이 세상의 모습과 같습니다.
     자비가 없는 자비의 집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은혜의 집에 진짜 은혜를 주시려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낫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던 그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병자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이제 그에게 놀라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어로 <에게이레>인데 현재 명령형입니다. 현재형은 진행의 의미가 있고 명령형은 강한 의무입니다. 일어나라(get up)는 말과 오라(come)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예수님 앞으로 오는 삶을 영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까지 의지하던 침상을 이제는 거두어 메고 가라는 것입니다. 침상이 이제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라(walk around)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에게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능력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낫게 되는 표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나아서라는 말은 헬라어 <휘기에스>인데 완전한 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조치 없이 말씀으로만 완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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