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0.14 월 21:04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코메니우스 심층분석 (10)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0.11 18:52
  • 호수 459
  • 댓글 0
정일웅 교수(한국 코메니우스 소장, 본지 논설위원)

3) 코메니우스의 학문에 관한 현대 학자들의 평가

이 책들은 기독교적인 삶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철학적이며, 우주적이며, 인간학적인 그 시대의 사상들을 대변하였고, 특히 종교개혁이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삶(세상)의 개혁, 즉 세계의 개혁에 관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방법론을 서술해 놓은 그의 신학적인 대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코메니우스는 모든 유럽의 지성(철학)인들과 정치인들과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요청하였고, 특히 교육과 정치와 교회의 3가지 영역의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담아두었던 것이다. 
  그러면 코메니우스가 “인간사물의 개선에 대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제언”을 통해서 성취되기를 바랬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코메니우스의 핵심교육철학인 판조피아(Pansophia)사상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었다. 이 라틴어 말은 우리말에서 범지혜(汎知慧), 또는 ‘모든 지혜’로 번역된다. 인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무엇인지? 그 내용과 존재 방식과 존재 목적을 아는 것이며, 그것을 정확히 알아야만 원래 목적된 대로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배움을 통하여 얻어진 가치를 인간아 사용할 때, 만일 양심적인 자유의지의 판단과 작용이 왜곡될 때, 무질서와 가치혼돈이 거기서 발생된다는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존재하는 사물의 이유와 방편과 목적에 대한 앎은 곧 창조주의 뜻을 헤아리는 것과 연관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르게 아는 것이며, 그 목적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코메니우스에게서 판조피아(Pansophia, 모든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나아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삶의 전체 과정에 대한 올바른 지적인 이해를 뜻하며(롬11:36), 인간은 그 과정에서 모든 지혜(내용, 방법, 목적)를 헤아리고, 본래 목적한 대로 사용해야 하는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코메니우스는 강조하게 되었다. 코메니우스는 역시 이러한 판조피아의 사상을 성경에서 발견하였는데, 골1:28절에 나오는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란 말에서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교육을 착상하게 되었고, 그것을 결정적인 근거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자유의지의 올바른 선용 때문에 코메니우스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지혜를 배워야 하며, 그 지혜를 올바르게 사용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윤리 도덕적인 완전함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뜻하였다. 그리고 코메니우스는 7권 각각의 책 앞에다 이와 같은 전체(모든)를 가리키는 판(Pan)의 개념을 연결시키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책인, 범각성론(Panegersia, 모두를 깨우침)의 서문에서 코메니우스는 범개혁(모든 것의 개선)의 의도한 바를 상세히 밝힌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다스려야 할 세상 사물들(자연/피조물)과의 관계이며, 진지하게 서로 대화해야 할 동등한 다른 사람(이웃)들과의 관계이며, 또한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된 지식(경건)들을 알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영원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의지는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과의 교제를 위한 준비에 힘써야 하는데,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학문(eruditio)과 정치(politia)와 종교(religio)의 3가지 영역에 관계된 지식들로서, 그것들이 바로 인간사(人間事)에 해당하는 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은 이 3가지 영역의 일들이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 놓여 있는데, 그것들이 인간이 겪고 있는 불행임을 느끼고, 그것의 개선(改善)에 대한 소망을 사람들로 하여금 갖도록 일깨우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원상태, 즉 낙원의 상태는 인간의 타락으로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였고,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학문과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 관계된 것들로서, 그간 여러 개혁(루터, 쯔빙글리, 멜란히톤, 부쳐, 칼빈, 부게하겐 등)들에게서 개혁의 작업이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임을 지적하게 된다. 먼저 종파 간에 서로를 파멸시키려는 의도를 가지는 한, 종파들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욱 늘어났으며, 적대감을 가지고 없애려 했으나, 더 날카로워지기만 했다는 것을 지적하게 된다. 학문적인 작업은 많으면 많을수록 학문은 더욱 엉클어져 갔기 때문에, 이제는 먼저 병폐를 찾고, 치유책을 찾으며, 이 두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지금까지의 개혁의 시도들이 종교, 정치, 학문의 어느 한 특정한 부분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바로 잡는 개혁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이며, 온전한 개혁은 이제 이 3가지 사회적인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체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삶의 개혁이며, 그것을 세계개혁으로 부르게 되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