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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0.02 15:20
  • 호수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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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

난 은유를 좋아해요. 은유는 뭔가 자유로움을 품고 있죠. 해석의 여지가 있는, 우겨도 괜찮은 여유, 새로운 길이기도 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죠. 시에서 메타포를 이야기 하지만 조금만 유의해서 듣는다면 모든 단어나 문장 가운데에 은유는 아주 섬세한 모습으로 살아있어요. 너무 깊거나 또 투명해서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은유는 혹시 감추어진 비밀 같은 것 일수도 있어요. 삶의 비의일수도 있구요. 어쩌면 혹시 깊고 순전한 시간의 절창일수도 있을 거예요. 고요히 그만의 목소리로 부르는.....

며칠 전 속초에서 설악산 자생 수목원을 걸었어요. 설악누리길이 있더군요. 세찬 바람으로 인해 채 단풍들지 않는 잎들이 바람에 밀려 가득 져내려 있는 길이었죠. 푸른 잎들이 가득한 소롯길은 조금 어둡고 스산해보였어요. 가을이라 그늘이 짙어서이기도 했겠지요. 숲은 우리뿐이었어요. 두 부부ㅡ명절 끝난 후라 한가해서 좋을 것 같다고, 리조트 방을 얻어 놨다고 오라고 해서 길을 나섰죠. 은퇴가 안겨준 자유로움이기도 해요.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골짜기 아래 숲길은 아직 푸르렀어요. 야트막한 산길을 올라가니 봉우리 위에 무덤 두 채가 나란히 있고 그것을 비석이라 해야 하나, 커다란 돌에 자신의 불효를 운운한 매우 적나라한 글이 가득 새겨져 있더군요. ‘효자가 못되는 개자식’이란 문장이라니... 학벌이나 학문의 길이로 무지를 셈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봐요. 설령 그런 높낮이 생각을 한다면 바로 그가 무지한 사람이겠죠. 하지만 은유가 없다는 것은......생각을 멈추게 하듯 갑자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길이 나타났어요. 노란색이 뿜어져 나와 사위를 물들이고 있더군요. 봄날의 노랑과는 깊이가 다르죠. 맑음에 처연을 고움에 슬픔을 적신 빛이라고나 할까, 이른 봄 생강나무 산수유 개나리의 자지러들 듯 한 노랑색들은 저를 밝히죠. 그러나 가을나무 가을 숲 가을 단풍은 저를 벗어나 사람에게로 스며들어요. 그러니 결국 색도 빛에 마음을 얹어 바라보는 것 아닌가, 마음이 느끼는 빛이 색 아닌가, 봄 숲이 은유가 엷다면 가을 숲은 깊은 은유의 숲이죠. 에단호크가 감독한 뉴욕 소나타라는 다큐에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요. 욕심이 많은 성격에 깊지도 못해서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두 번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그러나 번스타인 세이모어, 아흔 살이 넘은 피아니스트 다큐는 두 번을 봤어요. 음악이 있어서기도 했고 그가 하는 모든 언어가 제겐 깊은 은유를 지닌 어휘로 다가왔거든요. 그는 한국전쟁에 왔었데요. 어느 날 땅콩을 조금 가지고 밖으로 나갔는데 사슴이 다가오더니 그의 손에 든 땅콩으로 입을 들이 밀더래요, 아 여기가 천국인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산야에서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얼마나 배가 고팠기에 사람의 손에 든 땅콩을 겁 없이 먹으려고 했을까,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절박함을 은유가 깃든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만난 천국은 정말 천국이 되는 거예요. 아마도 그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할 때 가령 월광이나 달빛 같은 곡ㅡ 베토벤이 월광을 시연할 때 남자다움을 대단한 것으로만 여겼던 그 시절의 남자들이 울었다더군요.ㅡ그 사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만난 천국의 순간이 그의 음악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요?, 그는 슈만의 환상곡을 치고 난 후 하늘을 만졌다고 하더군요. 이 은유적인 표현은 슈만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길처럼 내겐 여겨지더군요. 그는 속삭이듯 말해요. <피아노는 작은 소리가 중요해> 그 단순한 문장이 주는 커다란 울림이라니, 사실 삶도 그렇죠. 그 갈래는 미미하고 그 결은 소소하죠. 확장을 해가면 매 순간이 고와지고 결국 중요해지죠. 맞아요. 은유는 결국 그 깊이에서 삶의 흔적을 들어내는 거랍니다. 결국 은유는 우리네 삶을 지극히 풍요롭게 만들고야 마는 존재가 되는 거죠.

먼 초원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해요. 길들여진 눈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시 그 먼데를 바라보면서 마음 아득해지고 그러면서 눈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가을 숲이 지기위해 저토록 아름다워 지듯 말이죠. 은유 가득한 가을 숲. 난 은유를 좋아하는데 당신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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