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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41 )고군산군도의 어머니 추명순전도사 ( 1908-1995 )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0.02 16:21
  • 호수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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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곤 목사(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장, 본지 논설위원)

군산 앞바다에 소재한 고군산군도(16개 유인도, 47개무인도)는 새만금에서 신시도를 거쳐 장자도까지 연육교를 놓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과거엔 유배지처럼 천덕꾸러기로 가난과 미신에 쪄들은 섬이었다. 이곳에 추명순전도사의 24년 동안의 헌신은 기쁨과 소망의 복된 섬으로 가꾸었다.

추명순은 보령 웅천면에서 무남독녀로 출생하여, 15세에 서천읍의 유지인 조씨와 결혼하였으나, 얼마 후 남편은 첩을 얻어 딴 살림을 하였다. 그는 시퍼런 칼을 가슴에 품고 4년 동안 남편과 첩을 죽이려고 하던 중, 관상쟁이가 새벽마다 ‘정화수(井華水)’기도를 시켜 엄동설한에도 목욕재배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한다. 3년이 되어 꿈을 꾸는데 하늘에 닿은 무지개 사다리가 안마당에 있어 올라간다. 천사의 안내로 파란 유리바다와 12진주문과 황금 문을 들어가는데 도중에 죄인들이 지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다. 예수님 앞에 나갔을 때 “아직 올 때가 아니니 내려가라!” 은 음성을 듣고 깨어난다. 그리고 친척 되는 할머니의 전도를 받고 4Km 밖의 교회를 출석한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확인하고 남편과 첩을 증오했던 것을 회개하고 성령세례를 받는다. 이후부터 추명순은 복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전도 다니다가 남편에게 붙들려 심히 맞아 실신했는데, 이때 예수님의 피 흘리시는 십자가를 보고 새 힘을 얻는다. 또 한 번은 남편에게 붙들려 산속에 끌려가 목만 내놓고 묻어 버린 후 ‘예수귀신 믿으면 죽여 버리겠다.’ 할 때, ‘나는 오늘 천국가지만 당신도 꼭 예수 믿기를 바라오.‘ 말할 때 ’지독한 년!‘하고 남편은 떠났다. 이때 추명순은 하나님께 살려 달라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오늘 바라던 천국 가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러나 죄인 남편을 용서하시고 예수님 믿고 천국에서 만나게 해주세요!‘ 눈물로 기도했을 때, 갑자기 웅덩이가 갈라져 살아나게 되었다고 간증한다. 20세의 외아들이 갑자기 죽은 후, ’아들을 잡아먹은 년‘ 이라며 시댁에서 쫓겨나 친정에 기거한다. 얼마 후 친정 부모님이 다 세상 떠나시고 재산을 정리하여, 비인성결교회를 개척하고 건축을 하고 섬긴다. 해방 후에는 교회가 없었던 김제의 용두리교와 용진교회를 설립하고 목양을 한다.

1958년부터 고군산열도의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방축도, 야미도, 관리도, 연도, 말도 9곳에 군산중동교회 김용은목사가 교회를 세울 때 1960년에 고군산군도 교회에 순회전도사로 부임하면서 섬 선교에 올인한다. 가난한자를 돌보며, 미신을 타파하기 위하여 김용은 목사와 함께 세계구호위원회(WRC)의 지원도 끌어냈다. 찬송가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를 부르며 이 섬, 저 섬을 다니면서 굶주린 자에게 밥이 되시고, 헐벗은 자에게 옷이 되시고, 외로운 자에게 친구가 되시며 새마을 운동에도 적극적 이었던 고군산군도에 영적 어머니가 되셨다.

1960년부터 1983년 은퇴할 때까지 군산에 나오면 필자의 집에 기거했는데, 기억으로는 사자같이 쏘아보는 눈빛의 카리스마가 있었고 늘 성경을 읽고, 잡담이 없으며, 기도했다하면 3~4시간씩 기도했다. 고군산열도의 망주봉, 선유봉, 장자봉, 무녀봉등 각 섬의 봉우리에는 전도사님의 눈물이 고여 있어 복음화 율이 50%에 이른다. 일평생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올곧게 사신, 아름다운 헌신의 일생이었다.

1983.12.1.군산중동교회에서 추명순전도사 은퇴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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