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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9.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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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좋은 성도가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해는 극심한 흉년으로 소출이 전혀 없었다. 소망으로 씨를 뿌렸으나 역시 그 다음 해에도 대흉년이었다. 남은 것이라곤 땅 몇 마지기뿐이었다. 하루는 밭에 나가보니 피골이 상접한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정성을 다해 치료했고, 없는 중에도 보양식을 지어 먹였다. 그 사내는 알고보니 이곳저곳 순회하던 전도사였고, 2주일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정처없이 다니다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농부는 이 전도사의 딱한 사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밭의 절반을 처분하여 그 전도사에게 전해주었다. 이후로 농부가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다가 소가 그만 밭에 푹 빠지고 만 일이 일어났다. 농부가 소를 꺼내보니 거기에는 금은보화가 있었다. 몇 해가 지난 후 도움을 입은 전도사가 농부를 다시 찾아왔다. 계속된 기근으로 농부는 더 가난해졌으리라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농부는 더 부유해져 있었다. 탈무드의 얘기다.
이 세상에 우리의 것이 없다. 생명조차도 주님의 것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이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인 것이다. 토지도, 재산도, 건강도, 지식도, 가족도 모든 게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래서 많고 적음이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라 감사하게 받으면서 하루하루 주신 사명을 위해 서로 사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니기에 구속할 이유가 없고, 네 것이 아니기에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모든 게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니 필요한 사람과 나누는 것이 당연하며, 나누지 않은 것이 죄가 된다. 내 자녀만 자녀가 아니라 남의 자녀도 자녀여서 주일학교 교사들은 가슴으로 영적 자녀를 낳고, 그들을 위해 품에 품고 기도한다. 주일학교 어린이가 대형교회가 목사가 되어도 그 교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아이처럼 그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부흥했다.
주님의 것이 사라지고, 내 것이 산을 이루고 있다. 분쟁은 소유에서 시작되고, 평화는 포기에서 가능하다. 부활은 고난에서 가능하고,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비전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약속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교회 본연의 자세부터 가져야 한다. 다양한 목회적 시도가 각 교단마다 일어나고 있다. 정년연장, 연금수급문제해결, 작은교회돕기, 목회자윤리실천 등등 모두가 다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놓는 현실적 방안들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진단이다. 어디에서부터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인지,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진단한 후에라야 처방을 내려야 한다. 사후약방문식의 일시적 아이디어로 비탈길에 서있는 한국교회를 끌어올릴 수 없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 교회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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