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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풀어 쓴 문준경(34)백정희 전도사를 품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9.18 16:55
  • 호수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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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문준경전도사 문중 4대손서울서지방 제일교회 담임)

“어머니!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결혼하고 시댁으로 갔는데 남편이 딴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 거에요. 집안에서 결혼을 시켰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차라기 죽고 싶었지요.”문준경 전도사에게 딸과 같은 여인, 백정희는 울부짖음으로 하소연 하였다. “그래! 안다. 나도 그랬다. 나도 남편 사랑 제대로 못 받고 자녀도 못 낳고 그랬다. 그래도 어쩌냐…, 이제 맘 다스리고 기도하잖구나! 주님이 네 마음 알아주실 것이다.” 문 전도사는 백 전도사의 마음을 이렇게 어루만져 주었다. 젊은 23살의 백정희는 이렇게 문준경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뒤를 이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백정희 전도사는 충청도 논산에서 1918년 2월 8일에 태어났다. 18세에 공주군으로 출가하여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3년을 지나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다. 남편이 신혼 초부터 다른 여자를 집에 들였으니 어찌 자녀가 생기고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르며 백정희는 마음의 병을 얻어 심히 앓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집안 어른들에게 며느리를 이렇게 두면 죽게 될 것이라며 읍내 교회라도 내 보내라고 독촉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정희는 노성성결교회로 나가게 되었다. 교회를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짐이 녹아내리며 평온이 찾아왔고 병에서 놓임을 받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이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1940년 대전에 있는 호남성경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해 3월, 문준경 전도사의 고향인 암태면 도창리교회로 파송을 받아 송곡교회, 원산교회, 가섬기도소 등을 왕래하며 섬기게 된다. 당시 총회본부에서는 전도자를 파송하고 사역비를 매월 지급하였다. 하지만 1941년 선교사님들이 일제의 탄압에 의해 철수하게 됨에 따라 재정적 어려움으로 더 이상 사역비를 보내줄 수 없게 되었다. 백정희는 사역을 계속할 수 없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문준경 전도사는 백정희 전도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고향 암태도로 찾아가지만 만날 수 없었다. 백정희를 꼭 만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충청도로 찾아간다. 이미 출가외인이었기에 친정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백정희는 시댁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 형편은 안봐도 뻔한 것이었다. 남편의 괄시와 부인의 자리를 빼앗아 버린 여인의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는 다시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이때 문준경이 그녀의 손을 잡는다. “백 전도사! 여기 있으면 안되오. 여기 있으면 백 전도사는 죽소. 나와 같이 갑시다. 남편 사랑도 많이 받고 자식도 낳고 싶었지만 나도 그러질 못했소. 하지만 주님께서 나를 살려주셔서 내가 주의 일을 하게 되었소. 증동리에 가면 교회도 있고 땅도 있으니 우리 서로 의지하며 주의 일 하며 같이 삽시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꼭 데리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사랑받았던 10년의 세월은 접어버리고 자신의 처지도 백정희 전도사와 매 한가지라고 말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붙들었던 것이다. “전도사님도 저처럼 이러하셨어요? 나만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전도사님을 살리셨군요. 그래요! 함께 가겠습니다. 주님을 남편으로 삼고, 교회를 집으로 삼고 그리고 전도사님을 어머니로 삼아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백정희는 마음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 문준경을 따라 증도로 입도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 그 정도는 다르지만 여러 면에서 닮아 있었던 여인들, 그래서 서로 의지가 되고 용기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녀는 문준경의 사역에 대해 특별히 순교에 대해 증언자로 쓰임받기에 충분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문준경의 사역을 이어받아 서남해의 어머니가 될 만한 귀한 여인이었다. 이 만남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중에 준비되었으리라. 그 오묘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의 해가 속히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서남해를 품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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