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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니우스 심층분석 (8)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9.05 17:13
  • 호수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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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교수 (한국 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전 총장대학교 총장, 본지 논설위원)

2) 코메니우스의 작품과 그의 활동역사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드라빅의 예언인데, 그는 30년 종교전쟁에서 프로테스탄트가 승리하고,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언했으나, 그 예언은 적중되지 않았으며,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심지어 코메니우스의 옛 제자였던 폴란드의 형제연합교회에 속한 니콜라우스 아르놀드(N.Arnold,1618-1681)의 코메니우스의 신학을 비판하였는데, 코메니우스는 큰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예언과 관련된 여러 비판에 관하여 그냥 침묵하고 있지는 않았다. 마침내 1665년에 “어두움에서의 빛”(Lux a tenebris)이란 책을 출판하여, 긴급한 전쟁의 위기상황에서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이 형제연합교회의 미래를 밝히는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고 드라빅(Drabik)의 소리에 경청했던 사실을 고백하였으며,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 외에 어떠한 구원의 계시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코메니우스는 암스테르담에서의 노년기에도 왕성한 저술 활동을 지속하였는데, 형제연합교회의 찬송가와 신앙교육을 위한 요리문답서, 형제연합교회의 역사에 관한 글, 교회법의 개정과 형제연합교회의 옛 신앙고백서의 개정판 등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정치와 직접 연관된 3편의 글, ‘삼단논법’(Syllogismus), ‘독일을 향한 마지막 나팔’(Die letzte Posaun ueber Deutschland), 그리고 ‘평화의 천사’(Angelus pacis)등을 저술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평화의 천사’는 1664-1667년 사이에 있었던 계속된 영국과 네델란드 사이에 해전을 종식 시키려고 브레다(Breda)에 모였던 양국의 사절단들 앞에서 코메니우스가 화란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여 연설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바다의 항해권으로 다투고 서로 주도권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바닷길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주인이며, 그 바닷길은 평화롭게 함께 사용해야 할 공동의 재산이지, 어느 개인이나, 한 나라의 것이 아님을 밝히고, 해상권 다툼은 중단되어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코메니우스의 연설에 감동을 받는 대표단들은 해상권 다툼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여, 코메니우스는 그 일에 그게 공헌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코메니우스의 평화 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는 평화교육자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코메니우스는 거의 인생의 마지막에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거부하고, 단일신론을 강하게 주장하여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소시니안주의에 대항하여 많은 비판의 글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노년의 코메니우스에게 가장 마음 아픈 일 중 하나는 역시 그가 죽기 전해, 흐로닝겐 대학의 칼빈주의자 마레시우스(S.Maresius,1599-1673)에게서 코메니우스의 종말론적인 사상이 비판된 일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코메니우스는 건강악화로 미레시우스의 비판에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코메니우스 학문의 연구가들은 마레시우스의 비판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놓고 있다. 코메니우스의 종말론적인 사상의 논쟁점은 초월적인 낙원과 내재적인 낙원 이해 사이의 관계로 본다. 그리고 이것은 동방교부(이레네우스)의 종말론신학과 서방교부(어그스틴)의 종말론신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대체로 17세기 프로테스탄트의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어그스틴의 신학에 따라 루터나 칼빈의 생각처럼 장차 이루어질 약속된 영원한 나라는 이 땅에 존재할 ‘내재적인 낙원’이 아니라, 영적으로 이해된 ‘초월적인 낙원’이었다.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이 땅에서 이루어질 천년왕국(그리스도의 통치)을 기대했으며, 그 나라는 인간이 개인의 경건의 거룩성의 도를 쌓으며,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인간의 준비와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회복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였고, 교육의 개혁과 정치의 개혁과 교회의 개혁이 필요 되었던 것이다.1)1) Comenius, CE(Clamores Eliae), S.67. 
 이러한 능동적인 내재적인 낙원에 관한 이해에 따른 인간적인 책임의 강조 때문에 마레시우스는 코메니우스야 말로 영원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인협동설(Synergismus)을 가르치는 자라고 비판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져야 할 영원한 세계를 인간이 만들려고 하는 종말의 환상주의, 또는 유토피아주의자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물론 코메니우스는 분명히 세상(하나님의 창조세계)을 보존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신인협동설’이 아니라, 신학적으로는 ‘신적인 협력’(Concurus divinus)을 더 깊이 이해한 것이었다. 신적인 도움을 위하여 인간은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레시우스가 코메니우스를 신인협동설 주장자로 비판한 것은 신인협동과 신적인 협력의 관계를 더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 데서 생겨난 마레시우스의 오해로 판명되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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