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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현 선교사의``해외선교지 소개 - 일본 나고야 ⑩일본은 기독교운동도 있고, 기독교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는 없습니다. 교회사를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7천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는 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주류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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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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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회 재일사역의 방향과 미래

 

일본은 기독교운동도 있고, 기독교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는 없습니다. 교회사를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7천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는 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주류적 교회들이 1880년대 후반에 소개된 자유주의 신학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초대 일본 기독교인들은 미국 선교사들에게 비교적 소박하고 단순한 신앙을 배웠습니다. 절대 무오한 성서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85년 '독일보급복음선교회'에 속한 스피너(spinner)가 도쿄에 와서 당시 독일 신학계를 풍미하고 있던 듀빈학파의 자유주의 신학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일본교회는 교회관이 희박한 미국형 교회의 체질을 가지면서도 신학은 독일의 신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바른 교회관이나 신학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아마도 일본 현대교회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라면 바로 이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교회와 협력과 교류를 하고, 또 선교협약을 맺은 교단들의 목회자들과 교류하다보면 그들이 가진 교회관이나 성서관에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가 복음주의적신학 부재와 선교인식의 부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함께 일하던 교단의 목사와 심각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목사의 행동이나 목회 방식에 신앙인격의 부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인간적으로 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인간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너무도 복음적이지 못한 이 사람들과 싸운다는 것은 도대체 답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이 사과나무 앞에서 다른 열매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선교협약을 맺고 같은 교단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그들은 복음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다른 목회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만을 말할 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치유를 믿지 않으며, 성령의 활동을 불신합니다. 그렇게 냉담한 그들은 윤리적 목사는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사로 서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자리싸움에 연연하고, 교회 경영자로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러한 울타리 안에서 거듭남과 성령의 은혜를 가지고 싸우기를 원하는 선교사들이 충돌하지 않는 것은 도리어 이상한 것입니다.

 

물론 내가 경험한 모든 일본 목사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복음주의적 목사들도 물론 있습니다. 특별히 홀리네스의 신학구조는 변함없이 복음주의적입니다. 왜 성결교회의 일본선교의 미래를 이야기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선교란 이 조직과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교단선교는 현지 교단과의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지 교단의 사람들이 복음에 대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다만 인간적인 교류와 시스템 구축만을 원한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홀리네스 교단과의 교류

일본성결교회(니혼호리네스)는 한국 성결교회와 가장 친근한 협력교단입니다. 신학의 뿌리가 같고, 복음적이며, 일본전국에 180여개 정도의 지역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재일직할지방회는 이 일본성결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교회를 구성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서로 간에 적극적인 교류가 원만하지 않은 교단이기도 합니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멤버십의 부재, 획일화되지 않은 선교정책, 교단행정의 상위(相違)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쉽게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넣어주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오랫동안의 동료(나카마)관계의 형성을 하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검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홀리네스 교단 신학교라는 멤버십을 기초로 합니다.

 

물론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특별히 일본인들의 폐쇄적 조직과 교단이라는 보수적 조직의 형태가 결합하면 그 폐쇄성은 더욱 가중됩니다. 그러므로 홀리네스 교단과의 선교협력은 시니어 선교사들을 통한 동등한 1:1의 대응과 동시에, 혹은 신학교에서 출발시킨 멤버십 형성을 통한 긴 시간 신뢰 형성의 두 가지 축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마도 신학교와 신학생 교류, 현지에서의 선교사 육성 등은 지금의 목회자 공급 위기 속에서의 홀리네스 교단을 건져낼 수 있는 기초와 선교의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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