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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 37 )동경 2.8독립선언의 주역 백남훈(1885~1967)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8.21 15:00
  • 호수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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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곤 목사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관장)

백남훈(白南薰) 선생의 아호는 해온(解溫)은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에서 출생한 교육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그는 25세 되던 해에 도쿄의 명치학원에서 공부한 후 1917년에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도쿄 한국YMCA의 회원이 되는 동시에, 일본 유학생 전도의 사명을 띄고 동경에 온 한석진 목사와 함께 학생교회를 창설한다. 그 학생교회는 재일본 한국YMCA회관 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는 초대 집사가 되었다. 초대 영수로서는 YMCA 총무였던 김정식을 비롯하여 조만식, 오순형 이었다. 그는 와세다대학 재학시인 1910년에 YMCA 간사에 채용되어 그 다음해에 총무로 승격됐다. 마침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전 기미가 무르익어 가고 백관수, 송계백, 최승만 등 서울Y 출신 학생들과 김도연, 최팔용, 이광수 등 학생들이 2.8 독립선언의 준비를 위하여 활발히 밀회를 거듭하였다.

드디어 1918년 2월 8일 오후 2시 재일본 한국YMCA 회관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의 발족이 선언되는 동시에 백관수, 김도연, 서 춘 등 11명의 대표 명의로 2.8독립 선언문이 발표되었고 조선 청년 400여 명의 만세삼창이 대포처럼 울려 퍼졌다. 이렇게 준비하고 성공시킨 중심인물이 34세의 백남훈 선생이다. 이런 백남훈씨가 11명 대표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선생까지 잡혀가게 되면 뒷처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2.8 주동자들은 모조리 체포되어서 감금되었을 때, 백남훈은 재판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고, 감옥에 있는 9명의 사식을 넣고, 서적과 의복을 넣어주는 것도 백남훈의 일이었다. 형이 확정된 뒤 면회가 월 1회로 제한되고 나서는 아예 그가 전담했다. 그해 12월 성탄절에는 모두 기독교인이었던 9명을 위해 교도소장에게 특별 허락을 받아 한자리에 모여 기도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들의 석방을 위하여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05인 사건 때에 한국인들을 위해 명변호사로 활약했던 우자와(鵜澤聽明) 를 비롯한 5인의 정의롭고 용기 있는 일본인 변호인단은 무료로 2ㆍ8 독립선언 주역들의 변호를 맡았다. 일본 사법당국은 이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하려 했으나 변호사들의 변론덕분에 출판법 위반이 최종 적용돼 각각 7~9개월 형을 받았다. 후세 변호사는 경술국치 1년 후인 1911년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써 일제강점기 최초의 필화사건을 겪었던 인물로 수많은 조선인들 변호로 조선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변호사’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200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2ㆍ8 독립선언 후 일본정부는 한인YMCA에 탄압을 하였다. 2ㆍ8 독립선언이 이뤄진 기독교청년회가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결된 거점이자 일본 내 조선인들의 독립운동 근원지라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조선, 대만, 중국 학생들이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같이한 단체로 주목했다. 백남훈 선생은 1923년 1월 귀국하였다. 동경 대지진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이었다. 그는 귀국하여 채필근, 송창근, 등과 함께 부산, 진주, 동래 등의 영남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 강연을 하였다. 그리고 1923년 5월부터 일신고보의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으며 그 뒤, 진주 일신여고의 교장(1929년), 협성실업의 교장(1939년), 광신상업의 교장(1942년) 등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에 헌신했다. 그후 8.15해방이 되자 선생은 정치계에 투신하여 1945년에 한국민주당의 총무가 되는 것을 비롯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1946년), 민주당 최고위원(1955년), 제 5대 민의원(1960년), 신민당 전당대회장(1961년)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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