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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코메니우스 심층분석(4)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7.10 16:48
  • 호수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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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교수(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전 총신대학교 총장,본지 논설위원)

2) 코메니우스의 작품과 그의 활동역사
그의 주요작품인 “하늘로 보내는 편지”로 유명하게 되었는데, 그 편지들에는 가난한 자와 부자들의 편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내고 받는 편지 등, 4개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또한 사회적인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께 호소하는 글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곧 은둔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보헤미아(체코)의 정치적인 상황이 형제연합교회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였고, 형제연합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가톨릭으로부터 코메니우스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벌써 1618-1620년 사이에 프라하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정치세력과 가톨릭 편에 서 있는 황제를 중심한 반종교개혁세력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정권찬탈을 시도했던 프로테스탄트의 제후세력들이 반종교개혁세력의 대항으로 결국 1620년 11월 프라하 근교, 백산 전투에서 크게 대패하게 되었고, 보헤미아는 다시 가톨릭의 정치세력이 지배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이 싸움은 바로 유럽사회 전체를 파괴했던 30년 종교전쟁(1618-1648)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은둔생활에서, 코메니우스는 가장 슬픈 비보를 받게 되는데, 그것은 흑사병으로 그의 아내와 두 아이를 잃게 된 일 때문이었다. 코메니우스는 인간적인 슬픔을 억누르고, 그때 만든 유명한 책이,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낙원”(Die Labyrinth der Welt und das Pradies des Herzens)이다. 이 책은 코메니우스가 경험했던 인간의 모습과 사회적인 삶의 형태를 비유적이며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역시 이 책은 서사시적인 형태로 작성되어 오늘날까지 체코인들이 많이 읽는 유명한 고전 작품이 되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 영국의 존 번연이 만든 천로역정은 코메니우스의 이 책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한다.    코메니우스는 1622-1625년에도 ‘슬픔에 슬픔을’, ‘위로에 위로를’ 등의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이글들은 형제연합교회의 성도를 위로하는 위로서가 되었다. 그리고 3번째 위로의 책은 “안전함의 중심”(Centrum securitatis)이란 글인데, 이 글에서 분명히 하나님, 인간, 그리고 자연을 삼각 구도로 하는 코메니우스의 사상이 드러나게 된다. 이 글은 “세상”이란 바퀴 한가운데(중심에)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묘사하였으며, 세상의 사물들은 방사선 모양으로 혹은 바퀴의 빗장 살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중심부 주변을 각기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 코메니우스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데, 즉 각각의 피조물은 두 개의 중심부를 가지게 되며, 하나는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시며, 보존자이신 하나님이시며, 다른 하나는 자시 자신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한 자신의 독특성과 본성에 관한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중심개념은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확고부동한 위치이자, 동시에 역동적인 관계성을 뜻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내적인 하나님과 외적으로는 회전하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중적인 사명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동시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일이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이중적인 사명을 놓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실수로서,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미로에 등장하는 호기심처럼, 피조물에 몰두하는 일 때문으로 판단하였다. 피조물에 몰두함으로써 인간은 그에게 주어진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되며, 동시에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부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것은 마침내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으로, 이것이 모든 악의 시초가 되는 것으로 코메니우스는 인식하였다.
  코메니우스의 글들은 대부분 성경의 내용을 통하여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작품들에서 확인되는 것은 코메니우스에게서 성경은 끊임없는 믿음과 용기와 희망을 제공하는 위로의 샘이었고, 지치지 않게 하는 능력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그는 하나님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자신의 고난을 보며, 그 자체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을 염려하며, 전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자요, 부활하신 자일 뿐 아니라, 역시 형제연합교회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실제로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유일한 왕으로서 ‘도래하고 있는 분’라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신앙의 확신이 코메니우스가 인생의 어려운 시간에도 절망하지 않도록 그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세에서 풍성한 결실을 이루게 된 것들을 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게 될 때에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팔에 붙들린 자신을 확신하고 있는 한, 아무도 자신은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코메니우스는 그의 이 모든 글에서 분명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프로테스탄트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에 처하게 된다. 그 이유는 1627년 보헤미아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의 갱신된 국가법’이란 것을 발표하여 프로테스탄트들의 모든 신분 계층들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가톨릭의 합스부르그 가문이 모든 권세를 쥐게 되었고, 보헤미아는 완전히 가톨릭의 세상이 되었다. 결국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는 더이상 조국 보헤미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이웃 도시인 폴란드 리사(Lissa)에 형제연합교회가 있는 곳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형제연합교회의 젊은 목회자인 코메니우스가 사전에 그 망명길을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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