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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반동성애 및 탈동성애 운동의 방향 3탈동성애운동은 이 시대의 그루터기로서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성(性)자유를 지키는 운동
  •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7.03 17:07
  • 호수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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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상임대표/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분당우리교회 한 부목사의 동성애 관련 설교 논란과 관련해서-
둘째, "대세가 이미 넘어갔다고“ 스스로 포기와 항복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로들 가운데서도 반동성애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는 분들이 있다. 이는 스스로 포기요 항복선언이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눈을 뗀 데서 오는 것이다. 대세가 넘어갔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참 진리와 가치는 다수결의 확보에 있지 않다. 진리와 가치의 궁극적 기준은 하나님에게 있다. 동성애 퀴어 이슈에 있어서 유일한 준거는 하나님 말씀이다.
셋째,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이 꼰대들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 본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동성애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꼰대란 자기의 폐쇄된 선입견으로 자기만 옳다고 하는 자다. 우리는 꼰대와 지혜자와 구분해야 한다. 꼰대는 맹목적 권위주의자이나 지혜자는 열려있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 동성애 문제를 보는 시각을 동성애자들이 내모는 차별과 혐오의 프레임을 넘어서 보다 시대사적인 맥락에서 이해와 통찰이 요청된다. 동성애를 이 시대적인 페미니즘과 젠더주의 흐름의 연관에서 성찰하면서 보다 넓고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3. 탈동성애 운동을 오늘날 글로벌 성혁명에 대항하는 그루터기 신앙 운동으로 전개해야한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이명진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동성애를 받아들인 영국교회와 서구교회와 미국교회는 술집과 카페로 변해가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차별자 및 혐오자라는 비난이 듣기 싫어 점잖게 그러지 말라고 성명서만 내고 물러서 있었던 영국교회는 심각한 역차별을 받고 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노방전도를 하는 전도자를 수갑에 채워 연행해 간다. 18세기 웨슬리와 휫필드의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던 영국은 어디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분별없이 받아들인 미국과 캐나다교회의 몰락은 심각하다. 교회출석자의 경감과 반대교회들의 이탈로 미국교회와 캐난다 교회는 심각한 후유증 속에 있다. 동성애를 받아들인 호주교회도 공동현상(空洞現像)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교회는  지난 세기 우리 민족에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주었던 복음전파의 나라들이었다. 이 모든 나라들이 소금의 맛을 잃고 세상 풍조와 적당히 타협했기 때문이다.
대세가 넘어갔다고 판단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전체 인구의 3%도 되지 않는다. 설사 97%가 동성애를 찬성하더라도, 말씀에 따라 반대하는 것이 성도로서의 자세이다. 이사야는 유다의 배교로 인한 심판으로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그루터기 신앙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12절)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12-13). 그리스도인은 세상 조류에 따라 가면서 분별없는 다수의 눈치를 보며 신앙의 양심을 저버리면 안 된다. 예수님은 이미 말세에 믿는자를 보겠느냐고 마지막 날의 배교적 사태를 예언하신 바 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교수)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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