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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풀어 쓴 문준경(8)문심과 이만신 목사의 고백
  • 정원영 목사
  • 승인 2019.06.11 16:16
  • 호수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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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 (문준경 전도사 문중 4대손, 서울서지방 제일교회 담임)

 

(독자들의 이 해를 돕기 위해 금번 호부터 지 나친 사투리는 현대어로 대신 합니다.)
“큰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 이세상에 없지, 내가 크면서 따르면 내가 열달을 못 채우고 팔개월 만에 아주 무서운 난산으로 태어났답디다. 그때 큰어머니가 와서 내 코에든 이 물질을 입으로 빨아내 숨쉬게 했고 축 늘어진 우리 엄니를 보살펴 정신 차리게 했다는구먼. 그런데 애기가 한 이레도 안가 몸에 태열기가 생겨 좁쌀 같은 것 이 돋아 벌겋게 된 것을 큰어머니는 매일 혀로 핥아 낫게 했답디다. 이러 저런 얘기를 어른들한테 들으며 자랐으니 나는 더욱 큰어머니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 아마 내가 너 댓살 되었을 때부터 큰 어머니 손잡고 교회 다녔던 기억이 납니 다. 현 북교동교회를 다녔는데 이성봉들은 어른들의 말에 목사님 댁도 다녔고 만나기도 했지. 그 때 우리집은 목포 북교동에 있었고 큰 어머니는 죽교동에 사셨는데 자주 우리 집에 오셔서 나와 내 동생 숙영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찬송가를 가르쳐주기도 했지. 목청이 엄청 컸던 기억이 나네. 숙영이를 데리고 증동리 다니시는 것도 참 좋아하셨어. 언젠가 큰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서울 가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면서 학비는 대줄 테니 그리해보라고 하십디다. 그래서 큰어머니는 경성성서학원을 다니게 되었지……. 그런데 우리가 좀 커서 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우리 어머니 관계를 알고부터 뭔가 좀 어색한 점이 생긴것 이 사실인데 엄격하신 아버지 뜻에 따를 수밖에 없어 우리 7남매는 큰어머니로 깍듯이 모셨어. 우리 7남매는 호적에 문 준경의 자녀로 돼있어. 문준경 큰어머니가 어머니와 같지.”
97세의 일기로 2018년 6월에 하나님 품에 안긴 문심은 그 옛날을 회상하며 두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렸다. 문심은 처음 출판된“섬마을 순교자 문준경”을 받아 들고는 대성통곡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으로 이 책의 출판을 주관 했던 이만신 목사를 집으로 오게 하였다. 이만신 목 사는 집안의 조카뻘 되는 관계였기 때문 에 서로 오가는 사이였다. 그래서 집으로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항의하였다. 아버지는 바람둥이에 난봉꾼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큰어머니의 사역을 가로막은 나쁜 사람으로 그려져 있었다. 또한 큰 어머니 문준경은 버림받은 비참한 여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역은 목포와 임자도 그리고 증도에서 본 대로 써진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과 관련해서 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아버지의 이름을 직접 사용하고 있었기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이때 이만신 목사는 자신의 고백대로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책을 증보하여 꼭 바로잡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활천 2014년 3월호, p.87.). 그러나 책의 내용은 바로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임자와 증동리는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먼 서남해의한 깡촌에 불과했고 그래서 이 이야기도 몇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도로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문심을 비롯한 자녀들이 둘째 부인으로부터 낳은 자녀들이기에 당시대의 분위기가 이런 신 분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더 이상 항의하지도 못하고 유야무야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책을 다시 쓴다 만다 하며 시간이 지나가게 되니 이 이야기가 그냥 묻히기를 바랐지.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지고 기념관이 세워지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버리더군. 그래서 우리 아버지와 두 분 어머니가 정말 이 책에 이야기처럼 정말 그런 사람들이 되어버렸어. 이 일을 내가 죽기전에는 고쳐야 하는데……,”문심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 며 들려준 이야기는 또렷또렷하게 들려왔다. 아름다운 신앙과 귀한 순교 이야기가 이렇게 한 집안과 자손들의 한으로 남아버린 연유가 무엇일까? 배경을 바 르게 이해하지 못한 역사는 허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바른 역사로 기술되기 에는 아직도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듯하다.

정원영 목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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