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6.20 목 21:28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배치영목사의 '목양신학과 목회철학'(9)제1부 목양신학의 고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6.05 16:52
  • 호수 446
  • 댓글 0
배치영 목사(예장합동 현리교회,두란노비전신학연구원 원장)

제2장 교회의 본질과 의의
3) 계시록의 일곱 교회

F. 빌라델비아 교회. 사데에서 동쪽으로 50km에 자리 잡은 빌라델비아는 주전 2세기경에 세워진 짧은 역사의 도시이다. 지금도 터키의 한 고을로 ‘알라셀’이라는 지명이다. 빌라델비아는 소아시아에서 모든 도시가 이슬람 화되어 버린 중세기 후반까지도 기독교 도시로써 온 세계에 알려졌다. 그 원인은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며 주님의 사명에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환경이나 여건이 어렵고 부족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는 가운데 신적인 능력을 유지 발전시키며 생활적 삶을 승리로 귀착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만을 받았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본받을 점은 ⓐ 믿음으로 행했다. ‘내 말을 지키며(8절)’라고 칭찬한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활 속에서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교회의 힘으로 신뢰하고 믿음으로 행하기를 즐거워했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교회를 통해 충성, 봉사하는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였다. ⓑ 교회의 본분을 지켰다. ‘내 이름으로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라고 칭찬했다. 즉 외부의 박해와 죄악의 유혹이나 굴레에 굴하지 않고 신앙적 정조를 지켰다는 것이다. 반면에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은 교회들의 공통적인 내용을 보면 사도들에게 전수받은 신앙들을(고전 15:1-3) 굳게 지키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에베소 교회는 사랑을 상실했고, 두아디라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여 신앙 정조를 잃었고, 버가모 교회는 이단 사설을 수용하여 변태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교회의 표상으로 초지일관 삼았기에 주님께 칭찬을 들은 것이다. ⓒ 사명을 다하였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10절)’이라는 말씀은 당시 소아시아에 자리잡고 있던 유대교의 방해와 모략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꾸준히 전파했다는 의미이다(9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십자가의 복음이 영원 유일한 진리요, 가치관임을 확신해야 하며, 그 자세로 흔들림 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롬 1:16).
G. 서머나 교회. 서머나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 로마와 인도 그리고 페르시아로 통하느니 교통의 중심지로 상업이 번창하여 물질적인 부요를 누렸다. 특히 도시 이름이 ‘유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유명한 향유의 생산, 수출지이기도 하다. 서머나 교회는 이름대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3:15)를 만방에 흩날리는 주님으로부터 빌라델비아 교회와 더불어 칭찬만을 받은 교회이다. 서머나 교회는 크나큰 시련과 환란 중에도 교회로서 본분과 사명을 잃지 않고 가지 밭의 백합화처럼 향기를 나타낸 교회이다.
서머나 교회의 본받을 점은 ⓐ 신앙을 지켰다. 서머나 교회의 신앙적 중심은 부활하여 영존하시는 그리스도였음을 알 수 있다(8절). 이 교회는 이 땅의 희망과 행복의 단절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영생하시는 그리스도를 신뢰했기 때문이었다(빌 3:10-15). ⓑ 자족의 능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물질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부요한 자’들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9절).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상실당할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목적과 소망으로 삶고 그 안에서 자족의 능력을 충족한 믿음으로 보완하며 믿음을 견지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 사명을 감당한 교회였다. 유대인들의 끈질긴 핍박과 간교한 계교와 로마 정부의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교회에 주어진 선교 사명을 감당했기에 감옥에 투옥되거나 순교자가 많았다. 유향은 깨져야 향기를 낼 수 있듯이 교회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난과 박해를 회피해서는 천상적 영원적 보상적 상을 받을 수 없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