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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찔레꽃머리(初夏)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5.23 16:56
  • 호수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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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

친구여 이건 책이 아닐세/이걸 건드리는 이는 사람을 건드리는 것일세/그대가 잡은 것, 그리고 그대를 붙잡는 것은 나일세/나는 책장에서 그대 두 팔로 튀어 안기네 <윌트 휘트먼>
친구여, 오늘을 ‘찔레꽃머리’ 시간으로 정한다. 우리 동네 찔레꽃이 아주 만개했으므로,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초록 이파리 사이에서 하얗게 피어난 찔레꽃의 절묘한 아름다움에서 다가오는 여름의 정한을 읽었을 것이다. 오월의 미풍 속에서 살짝 코를 스치는 찔레꽃의 옅은 향기는 아는 자에게만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꽃도 일종의 독서이다. 읽는 자에게만 읽혀지는, 보는 자에게만 보이는,
 최초의 작가는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라는 표현을 사용한 수메르인 제사장 ‘엔헤두아나’이다.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엔헤두아나 전에도 노래라는 행위를 통한 예술성과 함께 정보를 나누는 독서 행위는 있었지만 아무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라는 객관적인 어조로 독자를 의식하지 못했다. 습관이나 타성에 젖은 일들에서 새로운 이론을 창출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엔헤두아나’는 섬세하면서도 통찰력 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로버트 망구엘이 쓴 <독서의 역사>에는 아키텐의 엘레아노르 왕비 무덤 덮개에 새겨진 조각 사진이 한 장 나온다. 왕비가 누워서 책을 들고 읽고 있는 조각이다. 망구엘의 사진 풀이는 단순하다. “그녀는 사후에도 계속에서 책을 읽고 있다.” 이런 해석은 얼마나 명쾌하면서도 매혹적인가, 소크라테스는 책 읽는 행위를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왜냐면 ‘책’이란 스스로 말하는 것들을 설명하지 못하고 같은 내용만을 되풀이하는 쓸모없는 도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말로서 교육하고, 말로서 글을 쓰는 혹은 말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살았던 지식인의 지식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다. 알렉산더 대제 시절에는 누구나 다 큰소리로 글을 읽었다. 책이 귀했던 탓이기도 했을 것이고 글을 아는 사람이 적은 탓도 있었으리라. 알렉산더 대제는 자신의 군인들 앞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소리 없이 읽었다. 군인들은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우리들의 대왕, 저 힘 있고 능력 있으신 분이 글을 소리 없이! 읽다니! 아마 지금 누군가가  아름다운 시를 읽다가 그 운율에 젖고자 공원 나무 벤치 아래서 시를 큰소리로 읊었다 치자.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며 그를 피해 먼 길로 돌아가리라, 1000년경 페르시아의 수상으로 탐욕스런 독서가였던 압둘카셈 이스마엘은 여행을 하면서도 11만 칠천 권에 달하는 책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400마리나 되는 낙타를 알파벳순으로 걷도록 훈련을 시켜 가는 곳 마다 끌고 다녔다고 한다. 친구여, 생각해보라, 긴 석양빛을 따라 책을 등에 지고 천천히 걷는 낙타들의 움직임을, 자연 그대로의 움직이는 도서관, 그 장렬한 아름다움이라니,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햇빛과 책이 뿜어내는 빛을 견딜 수 없어서 해변이나 정원에서는 도대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콜레트는 고양이 팡세트와 함께 아버지의 안락의자에 앉을 수 있을 때 까지는 미술레의 프랑스사를 읽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잔티움의 아리스토파네스가 구두점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글들은 도대체 끝도 없이 시작도 없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마침표가 없는 글을 상상해 보라. 작은 점 하나가 거대한 레테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엔헤두아나 보다 훨씬 전 그 누군가는 진흙 조각에 10마리의 염소와 양을 상징하는 기호를 새겨 넣어 최초의 독서가가 된다. 숫자도 글자도 그림도 없던 시절이다. 그가 그린 아주 단순한 기호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그가 발견한 문이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는 거대한 문이란 것을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지점에 서면 독서는 단순히 독서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독서는 역사이면서 상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시작이며 끝이다. 의식과 인지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슴없이 무릎을 꿇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역사가운데 서있는 나를 바라보게 되고 내가 서있는 곳의, 때의, 나의, 시원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친구여, 그래서 찔레꽃머리 시간에 나는 생각해본다. 꽃 한 송이와 책 한 권은 아마도 근수가 같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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