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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오월의 숲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5.15 16:07
  • 호수 443
  • 댓글 0
                      위 영 작가

오시지요. 오월 하루. 숲으로, 우리가 매양 입어야 하는‘일상’이라는 갑옷을 눈부신 오월의 하루, 그 하루의 몇 시간이라도 훌훌 벗어 버리고 숲의 옷으로 갈아입는 겁니다. 세상을 이어주는 주욱 뻗어 있는 길을 달리다가 ‘광릉 국립수목원’이란 팻말이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을 하십시오. 그 길은 도시를 향하는 길이 아니라 숲을 향하는 길이므로 창문을 열어놓으셔도 무방합니다. 아니 가능하다면 창문을 활짝 열고 그 길을 가십시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숲은 깊어지며 신록의 빛깔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마음을 깊이 열고 그들을 호흡하며 속에 고여 있던 많은 것들을 날려 보내는 거지요. 습관적으로 걸쳤던 미소는 상대방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어디선가 추락하여 슬픔이라는 화석으로 변해가고 하고 싶지 않던 말은 입술 사이로 슬쩍 나갔다가 회항하여 마음 속 깊은 곳에 고여 냄새를 피우질 않습니까, 숲이 지닌 폭과 너비 깊이는 헤아릴 수 없어서 우리 속에 고여 있던 탁한 배설물을 어느 맑은 물보다도 더 청결하게 소쇄시켜 준다는 거지요. 매표소 입구에는 할머니들이 몇몇 야트막한 돌담에 앉아 두런거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요. 그냥 다리만 아프네..... 나무가 그렇고 그러제.....그래도 키우기는 잘 키워놨네. 할머니들의 너그러운 판단은 이팝나무의 속삭임으로 들리기도 하지요. 나무 길로 들어섭니다. 고로쇠나무를 바라보며 한마디 해두 됩니다. 넌 태생이 좋구나. 이런 곳에서 태어나니 누가 네 몸에 파이프를 박겠니. 그런데 나는 아직도 좁은 잎 단풍나무와 고로쇠 너 차이를 잘 모르겠구나. 고로쇠 나무가 서운할거예요. 이름 어여쁜 물푸레나무를 지나 키 크고 무성한 갈참나무를 바라보며 마루야마 겐지의 신갈나무 투쟁기를 기억해냅니다. 죽음 속에서 태어난 빛나는 청년, 물처럼 흘러가는 청년 주인공을.... 나무 밑, 사람 눈 잘 안 띄는 곳에 보랏빛 꽃들이 무구하게 피어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입을 헤벌린 듯한, 거기다 수염 두세 개 붙은 벌깨덩굴입니다. 오랜만이구나, 당연히 처음인 것처럼 진지하게 상견례를 합니다. 다리를 접히고 허리를 구부리고 내 눈보다 예리하면서도 감정이 덜 섞인 카메라 렌즈와 함께요. 카메라와 함께 하면서 내 눈에도 렌즈의 힘이  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렌즈처럼 자세히 보기도 하구요. 렌즈 마음에 들 때 까지 이리저리 앵글을 맞추면서 그 작은 풀꽃과 더 정이 드는 거지요. 벌깨덩굴 곁에 처음 본 하얀 풀꽃이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사상자류처럼 보이나 처음 본 식물입니다. 너도 네 소개정도는 할 수 있게 말을 좀 했으면 좋겠다. 너도 답답하지, 잎은 둥글레나 박새처럼 생겼고 꽃은 노루오줌 비슷한 풀솜대도 많습니다. 풀솜대, 마치 포근하고 달콤한 솜사탕 같습니다. 아 새로 전학 온 수줍은 아이처럼도 보이는군요. 며느리 주머니라고도 불리는 금낭화 곁에 섭니다. 꽃도 특이하고 이파리도 품위가 있는 우리나라 자생 꽃입니다. 예전 우리 어렸을 적 약간 그늘진 곳 어디에나 피어 있는 아주 흔한 꽃입니다. 지금은 제법 귀물이 되었지요. 오월은 풀꽃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무 꽃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자그마한 두 팔을 벌린 것 같은 괴불나무 아래서 한참 서성거리셔도 됩니다. 그 순박하고 순후한 모습을 가슴속에 담으면서요. 그 곁에 고추나무도 꽃이 피어납니다. 이파리는 영락없이 고춧잎입니다. 몽오리진 꽃도 제법 탐스럽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샛길이 보입니다. 샛길보다는 하얗게 피어난 병아리 나무꽃이 먼저 눈에 띈 거지요. 주름이 선명한 잎사귀들 사이에서 투명한 꽃 한 송이. 무성한 초록 잎 사이에서 드문드문 피어나는 병아리 나무 꽃을 만나게 되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도 사람 아무도 없는 숲 가운데서 호젓하게 말이지요. 오메, 아야, 세상에, 어쩌면...... 꽃이 지어내는 고적함도 사람의 그것에 못지않습니다. 고요한 푸르름 속에 드문드문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는 고요함을 더욱 눈부시게 합니다. 순간, 인생의 짙고 고달픈 색채가 옅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람 속에 부여된, 아무리 늙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그 미묘한 기류가 정화됩니다. 사랑이 아무리 달콤하고 강렬하다 할지라도 타인에 대한 상처가 주어지는 사랑이라면 단호하게 방향전환을 하게 하는 힘이 생깁니다. 죽음과 삶의 그 무한한 거리가 아주 가까워지는 곳, 그래서 삶도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는 곳, 그리하여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오월의 숲. 오시지요. 오월 하루,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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