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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의 ‘목양신학과 목회철학“(3)제1부 목양신학의 고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5.08 18:17
  • 호수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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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치영 목사(두란비전신학연구원 원장, 본지 논설위원)

제1장 신학의 가치와 일반적 개론

1. 하나님의 본체와 속성

2) 하나님의 속성

ⓓ 하나님의 유일성의 의미는 오직 하나의 절대자존, 불변, 무한하신 영이 계신다는 것이요, 신적 성질은 나누어지지 않고 또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영원부터 그 자체에 원인을 가지어 필연적이니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동일하게 독일이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수적 독일성보다도 그의 성질상 독특하심을 강조하는 성구들도 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라(신 6:4)’한 말씀에 ‘오직 하나’의 히브리어 ‘dj;;a,(에하드)’는 독특성의 의미한다.

3)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 즉 명칭은 사람들의 인위적 작명이나 조작이 아니라 신적 기원을 가진다. 이 이름들은 신적 본체의 계시를 통한 영원적 이름이다. 근래 종교계에서 하나님이란 말이 여러 가지로 오용되고 폄하되었으나 성경을 근간으로 신적 기원적 명칭을 회복하는 것이 바른 신학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바빙크(H. Bavinck)는 하나님의 명칭을 특별 명칭, 본질적 명칭, 인격적 명칭으로 구분했다. 본서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논한다.

a. 구약적 이름

‘엘(אל)’은 제일 주되는 의미를 가지거나, ‘강한’, ‘유력한’ 등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위엄과 권위를 표현한다. 하나님은 우주 위에 위엄과 권위의 대주재이시다.

‘엘로힘(אלהים)’은 경외됨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강하고 힘이 있는 분으로 경외의 대상을 가리킨다. 이는 단수로 나타나는 때는 드물고 주로 복수로 권위적 지시의 하나님일 때 사용된다. 엘로힘은 세계의 창조주요 통치주, 섭리주이심을 말한다.

‘엘욘(@/yl][)’은 ‘알라(hl;[)’에서 인출된 것으로 ‘올라간다’, ‘높아진다’를 의미하며, 숭고하고 존귀하신, 지존하신 가장 높으신 자를 말한다(창 14:19, 20; 민24:16; 사 14:14). 이 명칭은 특별히 ‘시’에 나타난다. 전기의 명칭들은 때로는 우상들에게도 사용되고(시 95:3, 96:5), 또는 사람들에게(창 33:10; 출 7:1), 관장들에게(사 5:8; 출 26:6, 22:8-10; 시82:1)도 사용되었기에, 엄밀히 말해 특별 명칭들은 아니다.

‘주(אֲדֹנָי, Adonai)’는 ‘재판한다’, ‘통치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은 전능하신 통치자로 모든 것의 굴복과 복종을 받으시며, 사람을 종으로 가지시는 자로 의미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칭호하는 통상 명칭이었으나 후대에는 ‘여호와’라는 명칭에서 환치되었다.

‘전능자(שַׁדַּי)’, 전능하신 하나님(שַׁדַּי אֵל)은 ‘사드(שַׁד, 주)’에서 왔다고 하나, 이는 권세있는 자로써 모든 권세를 소유한 자로 지시한다. 이는 하나님의 ‘씨’인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나타타내신 명칭이다(출 6:3).

‘여호와(hy:/hyּ)’는 옛 이름들을 환치한 명칭으로 특별히 은혜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는 이스라엘적 하나님의 특별 명칭이다. 이는 가장 신성하고 가장 탁월한 성로호 항상 인정되는 하나님이다.

b. 신약적 이름

‘하나님(θεός, 데오스)’, 구약의 ‘엘’과 ‘엘욘’의 동치어로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된 가장 보통한 명칭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민족적 종교 관념에 치중되었으나, 신약은 개인적 종교 관념에서 강조되고 있다(막 5:7, 눅 1:32, 35, 75; 행 7:48, 16:7; 히 7:1). 그러나 일반적으로 ‘데오스’는 소유의 소유격과 함께 사용되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으로 인정되고 있다.

‘주(κύριος, 큐리오스)’는 ‘큐로스(κύρος)’ 권세로써 오직 하나님을 전능자, 주, 소유자, 법적 권세와 권위를 가진 통치자로 지시한다. 또한 이 명칭은 하나님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되었다.

‘아버지(πατήρ, 파테르)’, 이 명칭은 이교도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고, 구약에서도 반복 사용되었다(신 32:6, 시 103:13, 사 63:16, 64:8, 렘 3:4, 19, 31:9, 말 1:6, 2:10).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정적 관계(출 4:22, 신 14:1, 32:19, 사 1:2, 렘 31:20, 호 110, 11:1)를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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