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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의 “목양신학과 목양철학”제1부 목양신학의 고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5.03 11:29
  • 호수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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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영 목사(두란비전신학연구원 원장, 본지 논설위원)

제2장 교회의 본질과 의의

1. 교회의 명칭과 사명

C. 친교(코이노니아, κοινωνα)

이 말은 성도의 교제, 성도의 교통, 성도의 사귐이지만, 본래의 뜻은 어떤 물건을 공통으로 나누어 가진다든지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신약성경에서 초대교회는 초창기 성령 충만 이후에 성도들 간에 ‘코이노니아’가 잘 이루어졌다(행 2:42-47). 이 관계는 수직적인 영적관계와 수평적인 삶적 관계를 종합적으로 말한 것이다. 신학자 ‘본 회퍼’는 성도들의 사귐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할 수 있는 것을 세 가지로 말했다. 첫째는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성도들이 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기도와 그 기도와 상응하는 행동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서로의 사죄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경적 친교(코이노니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토대 위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일어난다. 성령의 역동성을 통하여 일어나는 친교(코이노니아)는 남녀노서, 연령, 사회적 지위, 인종, 민족과 국가 등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다같이 복음으로 새로운 삶을 가지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써 이해적 타산을 뛰어넘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연대성으로 그들만이 느끼고 가지는 심오한 영적인 사귐을 말하다. 교회를 이와 같이 이 세상 사람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코이노니아’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D. 봉사(디아코니아, διακονια)

이 말은 식탁에서 일을 도우며 급사로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예수님 스스로 봉사(디아코니아)를 모범으로 보이셨다(요 13:5). 또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니…’라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도 빌 2:7에서 그리스도의 육신이 되심은 ‘그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스스로 없이 하시고 종 되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봉사는 예수를 믿고 구주로 고백하여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삶의 방향으로 실천해야 한다. 사도 베드로도 벧전 4:10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로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다. 미국의 하비 콕스(Harvey Cox)는 ‘디아코니아’는 ‘병을 고치거나 화해하는 일, 상처를 꿰매고, 갈라진 것에 다리를 놓고, 유기체에 건강을 회복하는 일과 같다’고 했다. 또한 성경에서 한 실례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에 대해 행한 사랑의 봉사를 비중 있게 논하며 현대 교회의 봉사의 양과 질에 대해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의 봉사(디아코니아)는 교회 내적 봉사는 물론이거니와 교회의 외적 봉사에도 인색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다.
 
2. 성경에 나오는 교회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구약의 교회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찾을 수 있으며, 창 7:23에 나타나는 노아의 방주도 교회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의 피난처였던 교회상은 구약의 족장교회들 속에서도 있었고, 특히 40년 광야시절에도 유대민족에게는 장막교회, 성막교회, 회막교회의 이름으로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고 제사장의 집례에 의해 제사를 드림으로 교회의 본질을 유지해 갔다.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 선교활동 결과로 교회들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지역의 이름이 붙어 등장한다. 바울의 선교로 신약의 교회들은 특정지역 거주민들로 구성되거나 또는 공동체가 모이는 하나의 도시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구약의 교회들이 의미적인 관점의 교회라고 한다면 신약의 교회들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조명한 유형학적인 관점에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계시록에도 사도 요한의 밧모 섬 유배 시 영감에 의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주님의 명에 따라 칭찬과 질책을 전하는데 이 또한 현재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형교회들에 대한 마지막 때의 교회적 사명과 성도들의 자세를 일깨워주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1) 구약의 교회
 
A. 에덴 교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창 1:27, 28)’ 하시므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셨다. 여기서 첫 인간인 아담은 교회의 모형인데(롬 5:14),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둘째 아담(고전 14:45, 47)이다. 당시의 에덴 동산교회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의 교회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는 탄생된 ‘특은’을 입은 교회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교회의 탄생은 불가능한 것이다. 에덴 교가 두 사람의 성도로 이루어진 교회이지만 그 속에는 장차 확장될 우주적 교회의 놀라운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범죄한 후 에덴 교회에서 축출되기까지는 이 세상에 첫 교회로써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세운 에덴 교회도 시련과 어려움이 존립했음을 상기해 볼 때 패역한 마지막 시대인 현실 교회의 목양과 목회의 어려움은 당연함과 위로가 되며 담담함으로 교회 운영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B. 방주교회. 방주교회는 8명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너와는 내가 언약을 세우리니 … (창 6:18)’. 이들은 초창기 교회에서 조상이 범죄와 저주 받은 이후에 에덴에서 축출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로 죄 가운데 출생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모든 인류가 홍수로 멸망될 때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창6:8)’로 구원 받은 자들이다. 이교회도 에덴 교회와 같이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인류는 가족으로 출발하였으며, 교회도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

방주교회는 모든 생물과 인간이 심판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교회다. 방주교회는 오직 신앙과 순종으로 구원 얻은 교회다(창 6:13-22). 방주교회는 생물의 재출발을 기한 교회이며 무지개의 새언약을 받은 교회이다. 방주교회는 그 안에 들어오는 자를 구원한 교회이며 밖으로 나와서는 새로운 인류의 운명을 개척한 교회이다. 방주교회는 전형적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의 몸된 교회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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