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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포럼 순교지탐방, 영성수련회 동행 취재신안군 증도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1박 2일
  • 박지현 기자
  • 승인 2019.05.02 15:15
  • 호수 442
  • 댓글 0

주여!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정신을 본받게 하소서! 

헤럴드포럼(회장 하문수 장로)가 주최하고 예수아카데미(대표 임병진 목사)가 주관한 제1회 증도 영성수련회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순교지 투어가 지난 4월 25일부터 26일까지 1박 2일간 전남 신안군 증도일대에서 진행됐다.

4월을 맞아 헤럴드포럼 회원부부들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청년, 분당장로교회 학생회 등 초교파적으로 참여한 일행은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을 중심으로 문 전도사의 복음전파 지역과 순교현장 그리고 묘지를 탐방하고 그의 정신이 깃든 곳곳 을 다니며, 1박 2일의 순교지 성지순례를 강행하고 신앙의 참뜻을 되새겼다.

25일 오전 7시 30분쯤 사당동에서 출발 해서 6시간 넘게 달려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임병진 목사의 인도로 기념관을 돌아보며 문 전도사의 순교당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운행하는 중 버스 안에서 가이드를 자청한 예수아카데미 임병진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의 일대기를 그린 CBS드라마를 통해 순교적 복음정신을 설명했고, 일행은 역사적 기록물을 접하며,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정신을 다시금 되새겼다.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물을 보존한 곳이 아니었다. 무속신앙으로 얼룩진 신안의 1004의 섬 지역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기독교 역사 정신이 깃든 곳이다. 기념관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 관계자들의 이름과 산하 교회들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 헌신한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성결문인회 회원들이 문준경 전도사의 신앙을 한 편의 시로 써서 그 흔적을 남겼다. 이를 감상한 일행은 이후 엘도라도 리조트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일행은 숙소를 배정받고 간단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는 리조트목욕실에서 몸을 담구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서로의 정을 나누었다. 저녁을 먹은 후 기념관으로 이동한 일행은 줄기세포에 관한 건강강좌를 듣고 각자 필요한 품목을 확인하고 주문하는 등 노화 방지에 나름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튿날 6시 기상과 함께 세면을 마치고 기념관을 이동한 일행은 관장 김헌곤 목사의 강연으로 문준경 전도사의 역사관을 설명 듣고 한국 기독교에서 문 전도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공감했다.

한국의 순교자 중에서 여성순교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이유는 순교자가 집중적으로 나온 일제 강점기나 6·25사변 당시는 여성이 사역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극히 적었으며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적이라 여성의 활동영역이 매우 제한되고 또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성결교단의 문준경(文俊卿· 1891∼1950)전도사는 여성사역자로서 성결교를 대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헌신적인 사역과 활동이 지금까지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어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 전도사가 전남 신안군의 섬들에 설립 한 임자진리교회, 중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등 14개 교회는 교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 들이 있는데 그중에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이만성, 이봉성 목사 등을 배출한 믿음의 산실이 되었다.

전남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의 작은 섬에서 출생한 문준경은 총명하고 게으르지 않아 주변의 칭찬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으나 남존여비 사상이 심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부친의 반대로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지 못했고 1908년 17세의 나이에 신랑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중매결 혼을 해야 했으나 이 역시 순탄치 못해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

이성봉 목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문준경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주님이 주시 는 사랑과 평안으로 삶의 기대와 기쁨을 채웠다.

그 후 학습과 세례를 받고 개인전도와 축호전도에 열성을 보였다. 이후 집사직분을 받고 청강생으로 서울신대 전신인 경성성서학원에서 공부하며 복음의 열정을 불태운 그녀는 방학마다 고향으로 내려가 1933년 임자진리교회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935년 증동리교회, 1936년 대초리교회를 차례로 건립했으며, 방축리에는 기도소를 지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무일푼에서 오직 믿음과 신앙으로 교회를 세운 그녀에게 각종 어려움과 고초가 있었으나 기도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성결교단이 강제해산되는 등 아픔을 같이하고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고문을 받는 등 수 많은 고초가 뒤따랐으나 굴하지 않고 신앙으로 승리하여 오늘날 성결교회의 참 신앙인으로 남아 후대의 거목이 되었으며 그 신앙의 밑거름이 오늘날의 성결교회를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

문준경 전도사에 영향을 받아 C.C.C(한 국대학생선교회)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끌 었던 총재 김준곤 목사는 “내 삶과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 바로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님”이라고 고백했다.

이러한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 일행은 임병진 목사를 통해 1박 2일 동안 틈만 나면 생생하게 들었으며, 둘째 날(26일) 김헌곤 관장을 통해 문준경의 선교역사와 사역에 대해 설명을 듣고 다시금 순교정신에 감동했다.

문준경 전도사에 대한 이야기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우리들의 어머니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제50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문준경을 병든 자의 의사, 문맹퇴치 선봉자이자‘우리들의 어머니’라 불렀다.

문준경 전도사의 선교정신이 깃든 전남 신안에서 일행은 둘째 날을 마무리하며 태평양소금박물관을 비롯한 이곳 일대를 둘러보고 서울로 상경하여 사당동에 도착 하여 일정을 마쳤다.

박지현 기자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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