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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쿠바를 다녀와서(3)사회주의 국가 쿠바 여행기(3)
  • 허상봉 목사(동대전교회 명예)
  • 승인 2019.05.02 14:58
  • 호수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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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계 공용화폐로 통용되는 달러에 대하여 10% 이상 높은 비율의 환전수수료를 공제한 후 거의 1대0.86의 통화가치로 환전을 하여준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고율의 환율 수수료와 유통화폐의 1대0.86의 교환은 공식적으로 미국을 거부하는 정치적 표시라고 한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오는 관광객은 비자비가 면제이며, 멕시코 경유 관광객의 비자비는 40불이다. 미국 경유자는 누구든지 비자비 100불을 내야한다. 이는 미국에 대한 보복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쿠바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지 못하고 국가부도 및 파산의 상황을 맞이하여 다국적 기업이 철수하였고, 미확인 사실이지만, 한국의 모기업도 200억불의 사업비를 국가로부터 받지 못하여 철수하였다고 한다.

쿠바는 1960년대 한국의 사회와 경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과 달리 쿠바는 현재로서는 경제적 발전의 가능성을 보기 어려웠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제재가 풀린다면 혹시... 그래서 쿠바시민들은 미국을 국제깡패(?)로 생각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을 떠올려본다.

국부로 존경받는 호세마르티, 정치적, 사회적 영웅 카스트로, 혁명가 체 게바라가 주도한 공산주의 혁명은 쿠바 국민에게 혁명으로 세운 자주 독립국의 자긍심을 심어준 것이며, 그들은 국민들에게 사상적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품었던 사상과 이념과 혁명운동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쿠바국민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참고로, 유치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나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외에는 취업 할 곳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며, 공무원이 되어도 월급이 20달러에서 30달러 수준이다. 정오에 거리를 보니 학생들이 눈에 많이 보였다.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은 질이 낮기 때문에 대다수 학생들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가 후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서 오후 수업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떠나 남쪽과 북쪽을 여행하면서 이미 문이 닫힌 지 오래되어 폐허가 된 공장들을 보았다. 또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벌판의 사탕수수밭을 바라보며 애니깽의 역사가 떠올랐다.
애니깽은 100여 년 전 한반도를 떠나 지구 반대편 낯설고 물 설은 험지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이다. 쿠바는 1905년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간 멕시코 이민 1세, 애니깽들이 노동계약 기간이 끝난 후 새로 선택한 땅이다. 애니깽이라는 말은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데 쓰인 선인장 ‘에네켄’에서 유래된 말로 한인 1세들의 별칭이다. 애니깽의 후손은 오늘도 쿠바에 살고 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빈부의 차이가 크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이주하여 살았던 스페인 사람들의 후손들에게는 일부 사유재산이 인정되어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국민 대다수는 빈곤한 상태로 살고 있다. 특히, 흑인 노예로 팔려왔던 이들의 후손은 지금도 가난과 빈곤에 허덕이면서 생필품의 절대부족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흑인 노예시절에 아프리카 고향을 생각하며 고된 노동과 힘든 삶 가운데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마음을 달래며 지내왔던 전통과 주변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칠레 등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지닌 천성적인 성향의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발랄한 자유분방함이 여행자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미국인으로 종군기자이며 작가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아바나 외곽에 7년 동안 거주하였다. 대다수 쿠바 사람들이 살았던 빈한한 생활과는 달리 넓은 저택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던 곳을 보았다.

그는 고급스러운(?) 취미생활과 3번의 결혼생활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또한 애견을 사랑하여 정원에 3마리의 무덤을 만들었으나 사냥하여 잡은 동물의 머리를 박제하여 거실과 서재의 벽에 걸어 놓은 것을 보며 인간 이성의 이중성을 볼 수도 있었다.

헤밍웨이는 우울증으로 인한 알코올 중독자로 살다가 자살한 불행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아마도 자신의 삶이 허무한 것임을 표현한 것 같다. 쿠바 시민들의 절대다수가 생필품이 핍절한 가운데 헤밍웨이는 부유하고 윤택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보여준 것은 허무한 인생이었다.

헤밍웨이는 소유한 것은 많았지만, 거의 대부분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사용하였고, 빈한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작은 어촌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것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쿠바 사람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바닷가에 흉상을 세우고 관광지로 소개하고 있다.

쿠바는 지금도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미국의 제재 하에 국제상거래를 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국가재정의 고갈로 기간산업에 투자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자본의 부재는 빈곤의 악순환을 보이며, 국제적인 제재로 외국기업이 들어오지 않으면 고용의 기회가 없다.

허상봉 목사(동대전교회 명예)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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