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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쿠바를 다녀와서(2)
  • 허상봉 목사(동대전교회 원로)
  • 승인 2019.04.19 15:39
  • 호수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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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미국의 메인 호가 아바나 항에서 정박 중에 폭발한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미국-스페인 전쟁(미서전쟁(美西戰爭)은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쿠바와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쿠바의 독립 운동이 스페인에 의해서 거부되자 이를 해결할 것을 미국이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미국 내의 강력한 확장주의적 정서가 미국 정부로 하여금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괌을 포함한 스페인의 잔존 해외 영토를 병합하도록 부추겼다. 아바나에서 일어난 혁명은 미국이 전함 메인 호를 보내 그들의 높은 국가적 관심을 보이도록 자극하였다. 메인 호의 폭발로 미국인들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스페인이 자신의 식민지를 억압하고 있다는 황색 언론은 미국의 여론을 움직였다.

전쟁은 필리핀과 쿠바에서 미국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1898년 12월 10일, 파리 조약은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의 지배권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노예 문제로 촉발된 내분으로 남북전쟁을 겪은 후 내부 정비와 북미 대륙 개척에 몰두하던 미국이 그 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스페인은 쿠바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으며, 1903년에는 관타나모에 미국 해군의 기지가 설치되고 쿠바의 중추적 기능을 미국자본이 장악하는 등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쿠바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측으로서, 명목상 선전포고는 하였으나, 실제 전투에 참가는 거의 없었다. 1930년 마차도의 쿠데타 이후로, 10여 년 간 계속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1940년 쿠바 공산당의 바티스타는 선거로 정권을 획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삶의 질은 향상되었으나 빈부 격차도 극심하게 되었다. 1952년에는 군부의 지지를 받는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얻어냈고, 바티스타에 대항한 1956년 바르킨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고, 1961년에는 그 혁명이 사회주의적임을 천명하였다. 이후,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쿠바 혁명 때부터 1993년까지 쿠바의 독재정권을 피하고자 120만 명의 쿠바인이 쿠바를 탈출하였다. 1970년대 쿠바는 볼리비아, 앙골라 등의 무장 봉기를 지원하였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해당 국가의 독재자들을 지원하였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쿠바는 소련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3년에는 일부 민간 경제에서 미국과의 교류를 허용하였으나, 미국은 금수 조치로 일관하였다. 쿠바에는 양심수가 500명에 이르는 등, 쿠바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인권 침해에 대해 비판을 받아왔다. 2008년, 병이 중해진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출처 : 위키백과)

관광객을 위한 민박시설 까사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건물을 보존하며 외양은 오래되어 낡았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주택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숙박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어 준 곳이다. 허름한 건물을 들어서는 순간 슬럼가를 들어가는 것 같은 환경에 불안한 마음이 살짝 앞섰다. 그러나 굳게 잠겨있는 세 개의 문을 지나 3층 실내로 들어갔을 때 거실 겸 로비 겸 식당으로 사용하는 곳의 분위기는 1960년대 한국 가정의 실내 같았다. 비교적 방안과 침구가 깨끗하였지만 부대시설은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작은 아나로그 TV, 진공관 라디오, 오래된 구형 전화기... 시간속의 여행임을 실감하게 한다.

집 주인은 정부로 부터 까사 운영 허가를 받기 위하여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기본시설을 갖추고, 교육을 받아 관광객에게 친절하였고, 최선의 서비스를 하려했으나 생필품의 부족으로 마음 뿐 인 것 같았다.

오래된 낡은 침대, 옆방의 소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시스템, 쿠바는 시설도 설비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통신을 통제하며 검열하기 때문에 인터넷 카드를 구입한 후 특정지역에서 만 사용할 수 있다.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없는 국가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체재에 대한 불만이 허용되지 않는 국가이다. 어쩌면 북한과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일전에 탈북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서울 한 복판에서 저렇게 반정부 시위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증거이다.’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였다. 미국의 지원으로 독립 후 자유경제체재와 자본주의를 수용하였으나 미국 기업의 독점, 미국 정부의 정치적 압제를 받으며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러시아의 지원으로 혁명을 일으키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 국유화, 공유화하여 국민이 잘사는 사회주의 국가로 존립하려 하였으나,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제재 및 압박으로 50년간 고립된 국가가 되었다.

쿠바는 이에 미국에 대항하여 미국식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미국계 다국적 기업을 철수시키고, 자본을 몰수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 

허상봉 목사(동대전교회 원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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