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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재 목사의‘성지역사이야기’<4>하 란(1)
  • 서광호 기자
  • 승인 2019.03.14 12:47
  • 호수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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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란의 연표

2. 하란의 역사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물렀다가 가나안으로 이주한 사실을 근거로 산르울파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이 산르울파였다고 주장한다. 우르와 산르울파 의 고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 그 주 장의 근거이다. 또 창세기 11장 31절에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려고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렀다는 내용도 산르울파에 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가나안으로 가는데 메소포타미아(이라크)에서 아나톨리아(터키)까지 북상했다가 다시 가 나안 방향으로 남행하는 여정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학자들도 하란근처에서 우르를 찾으려는 노력을 산르울파에 집중시켰다. 1930년대 이후 시리아의 우가릿트, 에블라, 알랄락크 등에서 출토된 토판 문서의 해독을 통해서 우르라는 도시가 여러개 있으며 모두 하란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울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과 아브라함의 기적에 관련 된 연못을 성지로 보전해 왔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종을 보냈는데 종은 갈대아 우르로 가지 않고 ‘밀가의 성’으로 갔다. 밀가의 성은 ‘아람 나하 라임’에 위치한 곳이다. 성경의 나하라임(대상19:6)은 하란을 의미한다. 한글 성경에서는 70인역에 근거하며 메소포타미아로 되어있다(창24:10). 그런데 야곱이 찾아간 리브가의 고향은 ‘밧단아람’으로 되어있다(창25:20). 많은 학자는 ‘밧단’을 아카드어 ‘파다누’로 보았다. 그 의미는 ‘길’이다. ‘하란’도 아카드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밧단아람을 곧 하란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의 고향이 산르울파가 맞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와 하란의 주신은 달의 신으로 같다.

 그러나 같은 구절에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났다는 사실에서 갈대아인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우르는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하란으로 알려진 곳은 터키의 동부 도시인 산르울파에서 시리아와 국경을 이루는 도시 악차칼레(Ak?akale) 로 가다가 도울루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10km 정도 달리면 원추형 집들이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에덴동산에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란에 관한 언급은 B.C. 18세기 마리 문서에서 발견된다. 이 문서에는 하란의 왕 아스디타킴(Asditakim)과 잘마쿰(Zalmaqum)의 군주들과 베냐민 지파의 장로들 사이에 하란의 신(Sin 달의 신) 신전에서 동맹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니느웨, 칼그미스, 상 메소포타미아(현 터키 동남부, 시리아 북부의 광범위한 지역), 히타이트, 그리고 지중해 연안 간 교역의 중간 기착지로 번성하였다. 달의 신전 2층에는 150 개 이상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어 상인들은 하란에 머물렀고, 이는 신전과 하란에 경제적 풍요를 가져왔다.

 하란의 달의 신은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제국과 미탄니(Mitanni)왕국 사이의 조약의 보증인 역할을 했다. 이것으로 보아 하란의 달의 신은 주변 족속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란은 지역 패권 다툼에서 B.C. 14세기경 하티(Hatti 히타이트=헷족속), 미탄니, 앗시리아의 3파전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을 뿐 살만에셀 1세 (Shalmaneser Ⅰ B.C. 1274~1245년)에 의하여 앗시리아에 합병되었다. 이후로 앗시리아의 가장 중요한 속주의 수도 역 할을 하였다.

서광호 기자  seojac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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