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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12)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3.13 16:52
  • 호수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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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3월은 부활의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 사순절이다. 부활절 시즌은 기독교에서 성탄시즌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시즌 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혈기가 죽고, 욕심이 죽고, 자랑이 죽고, 쾌락이 죽어서 사순절이라고 갖다 붙이자, 듣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혈기나 욕심이나 자랑이나 쾌락이 죽인다고 죽일 수 있는 것이냐면서, 내가 죽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사순절을 금욕주간으로 여기면서 부활절 전도주간으로 삼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금욕도 좋고, 전도도 좋고, 교회 부흥도 좋다. 그런데 진정한 부흥은 내가 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내가 죽지 않고 금욕적 생활을 한다한들 그게 부흥과 무슨 상관이며, 사순절 또는 부활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순절과 부활절의 관계를 수단과 목적, 방법과 결과, 신앙의 훈련으로 국한하는 것은 교회를 허물고 성경을 왜곡하는 인본주의적이고 목회편의주의적 행위일 수 있다. 다시 살리심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없는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을 선후차의 맥락으로 이해하면 십자가의 의미는 퇴색되고, 구약도 의미를 상실하고, 이 세상의 삶 또한 별 의미가 없는 이단 사설로 빠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

부활의 고통이란 말이 있다.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죄인에 대한 책임과 견진이 바로 부활에 담긴 중요한 의미라면, 부활은 또다른 하나님 고통의 시작이다. 사순절 잠깐 고생하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길 바라는 얄팍한 상술을 버려야 한다. 네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부활은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다. 내가 다시 산다는 것은 책임이고, 사명이고, 끝없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런 죽음보다 더한 부활의 고통을 정말 기뻐하면서 사순절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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