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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재 목사의 "성지 역사 이야기"아라랏(아라타, 우라르투) - 1
  • 서광호 기자
  • 승인 2019.02.13 22:23
  • 호수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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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르투 제국의 근거지였던 반 칼레성

1. 연표

2. 아라랏의 역사 

 아라랏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는 창세기 8장 4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 라랏은 하나의 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아라랏 제국이 자리 잡은 지역을 의미한다. 홍수 기사에 등장하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아라랏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B.C. 20세기 말에 기록된 수메르 서사시에서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우르크 왕국은 북쪽 산지(현재의 우르미아호 남쪽 미안도아브)의 아라타에 밀 등 곡식을 실어 보내고 아라타는 광물과 보석을 실어 우르크로 보냈다.

 수메르 이후 앗수르에서는 아라타를 우라르투로 불렀다.  살만에셀 1세는 B.C. 13세기 말경에 우라르투를 원정하고 원정기를 남겼다. 이때 우라르투 왕 국은 북쪽으로 밀려나 반 호수 인근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반 호수 동쪽의 바위산에 반 칼레시(또는 투프라크 칼 레성) 성채가 있다. 이 성채는 앗시리아와 패권을 다투던 우라르투 제국이 최초로 쌓은 것을 이후 이곳을 지배한 앗시리아, 페르시아, 헬라, 로마, 비잔틴 등에 의하여 개축되는 과정에서 단단한 벽돌, 돌, 또는 진흙에 나무와 돌을 섞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되어 ‘건축의 종합’이라 불리게 되었다.

 반칼레시에서 남쪽으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투쉬파 평원은 우라르투 제국의 수도였던 땅이다. 아슈루나르시팔 2세의 비문에는 우라르투 왕국이 앗수르와 인접한 국가라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그의 후계자인 살만에셀 3세는 우라르투를 침략하여 아르팟 성을 빼앗고 매우 적대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때 우라르투는 상당히 쇠퇴하였고 반 칼레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은 우라르투를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후계자인 사르곤 2세가 투쉬파를 점령하였다. 이때 엄청난 양의 전리품과 보물들이 앗수르로 옮겨졌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 포로를 끌고 간 바벨론을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그나스 등 아르메니아 지 역의 민족들이 메대와 연합하여 공격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렘51:27~29). 이 예언 후 50여년 만에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들어서게 되었다.

3. 방주가 머문 아라랏 산의 위치 

 전통적인 견해는 터키 도우베야짓의 북동쪽 15km 지점에 있는 아으르다으(A?rıda?ı 해발 5165m)가 방주가 머문 산으로 알려져 있다. 홍수의 영향에서 먼저 벗어날 수 있었던 우라르투의 북쪽 지역의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방주가 홍수 후에 안착한 곳이 가장 먼저 드러난 땅이었을 것이란 사실에 비추어 우라르투지역에서 신빙성이 있는 곳이 우리에게는 아라랏산으로 알려진 아으르다으(아으르산)이다.

산의 형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며 서쪽의 주봉과 동쪽의 부봉(3896m)으로 이루 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30km2나 되며 1840년 마지막 화산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가 상륙한 곳에 대해서 고고학적 근거와 고대 문헌, 근대 연구서 등을 근거로 다른 곳을 아라랏 산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관계만을 본다면 근거면에서는 이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에 취 하여 곯아떨어진 성경의 기록(창 9:20~21)은 우라르투 지역에서 고안된 포도재배 기술과 포도주를 만드는 기술 과 관련이 있다.

(다음호에 계속)

서광호 기자  seojac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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