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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2.0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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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탓탓!  한국교회를 좀먹는 사탄의 단어이다. 교회의 문제는 목사탓, 장로탓 지역탓, 서로 떠넘긴다. 학교의 문제는 총장탓, 이사탓, 교육부탓. 교단의 문제는 재정탓, 양심탓, 관행탓...
탓탓탓은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가는 우회로가 아니라 혐오사회로 가는 외통수 길이다. 탓을 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 정의, 개혁, 기회 등의 말잔치만 놔두고, 책임, 포기, 희생이란 메뉴는 없애버린 지 오래다.
주기철 손양원 김익두 이성봉만 위인이라고 누가 그러더냐? 지금같이 똥값인 바닥에서 십자가 걸고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생육신이고, 순교자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동강댕강 싹둑싹둑 잘려가는 대학교, 교회, 목사, 교수들의 인생. 이들을 무참하게 비리자, 범법자 낙인찍어 폐기처분해도 좋다고 누가 그러더냐? 마귀들이 쏘는 탓탓탓 총에 형제자매는 외마디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망신창이가 된 채 역사의 폐기물로 소각되고 있다.
미친 망나니 칼부림도 정도 것이지,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올라서 인간사냥을 즐기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광명의 천사로 둔갑하여 그레고리 찬가를 부르고 있는 학교와 교회에 그들이 원하는 성령이 임할까? 그들의 성령은 살리는 영인가 죽이는 영일까?
남의 약점을 들춰내서 자기의 정의를 증명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남의 약점을 이용해 벌어먹고 사는 일명 기생인생이 모르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천금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검있는 곳에 독수리 모이듯, 이런 자들도 필요처가 있으니,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하는 위선, 개인적 원한을 정의로 속여 파는 보복, 돈 되는 일이면 다하는 탐욕 등이 그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책임지는 것이다. 책임은 묻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다. 책임부터 묻는 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이다. 책임을 지는 것은 같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같이 죄값을 담당하는 것이다. 앞장서서 나팔부는 정의중독자들과 배후에서 그들을 부추기는 악마의 불쏘시개들이 학교와 교회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주께서 이 또한 판단하시리라.
동료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 동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서만 우리는 함께 새로워질 수 있다. 교회와 학교를 사법부의 놀이터로 전락시키지 말고, 진정한 변화를 위해 함께 먼저 희생하고 함께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개혁의 첫걸음이다.  목사를 범법자라고 고발하는 교수, 목사들이 형사같이 보이긴 해도 목사같지는 않더라는 말이 뼈아픈 원단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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