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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 코메니우스연구소·기독교학술원, 제3회 목회자 콘퍼런스 (10)코메니우스 교육신학사상의 역사적 배경⑩
  • 정일웅 박사
  • 승인 2018.12.29 16:23
  • 호수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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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와 코메니우스 생애와 관련하여

코메니우스(Amos Comenius)는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1살에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잃게 된다. 그의 고모가 고아가 된 그를 슬로바키아 국경, 남 모라비아의 스트라즈니체(Straznice)에 있는 자기 집에 데려다 돌보았다. 거기서 잠시 형제연합교회가 세운 마을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러나 13세에 그 지역이 습격을 당하고 마을은 불에 타 없어져버린 사건이 발생하였다.

코메니우스는 다시 니브니체로 돌아가 그곳으로 돌아가 그의 후견인인 방앗간집 주인으로부터 농사일과 수공의 일들을 배우게 된다. 그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고, 일찍부터 육체적인 노동으로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고아가 된 코메니우스는 그의 아버지가 남긴 작은 액수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고, 1608년에 후견인은 코메니우스를 프로레브에 있는 형제연합교회 소속의 한 인문학교에서 공부를 할수 있게 되었다. 3년 동안 공부한 후, 19세에 그는 대학에 갈 정도가 되었다.

코메니우스는 탁월한 학생으로서 이미 형제연합교회의 감독인 요한 랑네키우스(Langnecius)로부터 주목받고 있었다. 그는 재능을 가진 가난한 학생 코메니우스가 독일의 헤보른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계속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게 된다. 이 두 대학들은 코메니우스에게 신학적으로 깊은 통찰을 제공해 준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독일지역의 학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기의 형제연합교회에서 받은 교육영향에 충실하게 하나님의 최후의 비밀에 대한 모든 칼빈주의적인 신학적 사색들은 깊게 수용하지 않았다.

코메니우스는 이들 독일의 두 대학, 헤어보른과 하이델베르그에서 세분 교수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전자의 학교에서는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J.H.Alsted:1588-1638)와 요하네스 피셔(J.Fischer:1546-1622)이며, 후자의 학교에서는 다빗 파레우스(D.Pareus: 1548-1625)란 교수들에게서였다.

먼저 알스테드는 철학자요, 또한 신학자였다. 그는 철학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라적 전통에 서 있는 탁월한 교수였으며, 신학적으로는 개혁신학(칼빈주의)의 정통 노선에 서 있는 학자였다. 그는 특히 1618-19년에 화란 도르트레히트에서 개최된 유럽개혁교회의 첫 총회에 독일개혁교회의 신학자대표로 참석했던 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작업에는 백과사전(Enzyklopaedia)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능한 모든 학문적인 정보를 담아내는 백과사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코메니우스는 바로 알스테드에게서 이와 같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중요한 인용문들을 기록하며,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학문적인 방법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연향을 받은 교수는 요한 피셔인데, 그는 성경신학자였다. 피셔는원래 스트라스부르그 출신으로 칼빈의 개혁신학전통에 서 있는 신학자였다. 그는 1584년에 헤어보른대학의 학장이었으며, 성경신학자로서 성경번역과 주석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주석서 가운데 요한계시록은 1613년에 출판된 것인데, 그 책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천년왕국이 세상의 종말 전에 이 땅에서 실현된다는 믿음의 정당성을 밝혀주었다. 그의 종말사상은 사탄이 결박되어 있는 동안 만물이 온전하게 회복되어야 하며, 사람들과 국가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로 변화되어야 하며,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영으로 함께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게 된다는 입장이었다. 알스테드 교수도 피셔와 같은 입장에 있었고, 그들의 종말론은 그 당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물론 코메니우스는 이미 형제연합교회에서 배웠던 성경의 가르침과 교수들의 가르침이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코메니우스가 깨닫게 된 것은 선생들이 가르친 것처럼, 천년왕국의 도래는 하나님의 일로서 단순히 인간이 수동적으로 기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성에 대한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일웅 박사  www.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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